토마스 아퀴나스 선행연구 및 최근 연구동향: 에크하르트, 자끄 마리땡, 벨테, 장 뤽 마리옹, 하이데거
우리는 이러한 연구에 앞서서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토마스의 선행 연구에 개괄에 대한 비판적 안목이 필요하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신학과 철학은 서구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동방교회뿐만 아니라 서방교회 그리고 심지어 개신교까지 영향을 주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이 단순하고 명료하여 건조한 것도 사실이지만 기독교의 이해를 확장시키는 데 대단한 역할을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철학이 다양하게 변모를 겪어온 역사를 “토미즘”이라고 말한다. 선행 연구에 대한 전개 방법은 토마스에 대한 포괄적인 중세 연구 그리고 주제 별 선행 연구로 전개할 것이다. 에티엔느 질송 (Etienne Gilson: 1884-1978) 『The Philosophy of St Thomas Aquinas Thomist realism and the critique of knowledge』 소르본의 중세철학교수이고 캐나다 토론토 중세철학연구소의 창립자인 그는 데카르트 철학의 비판을 가했으며 중세 철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탐구로 출발하여 그는 19세기의 왜곡된 중세 세계관을 수정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중세철학에 대한 잘못된 통념, 즉 중세 사상들은 철학이 아닌 신학이고 고대 철학과 근대철학 사이에 철학 없다고 하는 존재하지 기존의 관념에 반대하며 자크 마리탱 등과 함께 중세 철학의 철학적 가치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는 또한 중세 철학과 토미즘을 연구하여 중세 역사에 대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한 근 존재에 대한 통찰들이 “나는 있는 자로다”(출 3,14)라는 시내산의 계시에서 유래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토마스 주의자들은 그가 자연철학보다는 존재론으로부터 철학을 시작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나 아퀴나스의 본문들과 16세기의 카예타누스의 토미즘 사이의 차이들을 고찰한 다음 그는 어떠한 신토미즘도 그 원래적 원천과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20세기 전반에 중세 철학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대표적인 사람이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연구에서는 그는 독보적 존재였으며 그의 철학을 자신의 사상적 기초로 삼았다. 또한 그의 생애의 말년에는 토미즘의 입장에서 특이한 예술론을 펴기도 하였다. 《토미즘》(1921) 《중세의 철학》(1922) 《중세철학》(1932) 《존재와 본질 》(1948)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마리도미니크 세뉘 (Chenu, Marie-Dominique :1985-1990) 『Aquinas and his role in theology, Toward understanding Saint Thomas』, 12세기와 13세기의 신학에 대한 많은 연구 하였다. 그가 집필한 『토마스를 이해하기 위하여』 (Toward Understanding St. Tomas)는 오랜 시간 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아퀴나스를 개방적으로 연구했다. 스콜라학적 토미즘에 얽매인 사람들은 교재들과 교본들에 의해서 경직화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반 근대주의의 결탁과 더불어 그 중세 박사에 대한 위대한 기억을 실증주의적 지성주의에게 건너 주고 자기들의 고유한 유사-종교 통합주의적 입장의 전형인 토미즘만을 고집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그리고 진리는 영원하지만 그 영원성은 우리가 시간성을 통하여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현재성을 가려내기 위해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도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를 무시하는 것은 무시간적 철학과 신학을 추구하는 것이고 계시의 실재를 지나쳐 역사 안에 있는 인간 본성과 은총을 극소화하는 일이다고 주장한다. 이브 콩가르(Yves Congar : 1904-1995)는 셰뉘의 제자이자 협력자이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어떻게 가장 실천적인 효과를 내는지에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역사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운동들에 대한 탐구를 아퀴나스 안에서 실재에 까지 이르는 역동성을 발견하였다. 콩가르는 자기의 스승 셰뉘에게서 교회가 여러 시대와 문화들에 따라 동일하면서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사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가 말하기를 아퀴나스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교차점으로서 그리고 광범위한 뜻에서의 성사적인 것의 영역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셰뉘와 콩가루의 생애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다른 중세 신학자들의 재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아퀴나스가『신학대전』의 첫머리 말했던 것처럼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모범적으로 모색했다.
수아레스(francisco Suarez 1548년-1617년) 토마스『신학대전』의 상세한 주해를 하였으며 또한 후세에 최대의 영향을 끼친 것은 철학적 저작이라고 볼 수 있는『형이상학의 여러 문제』(1597)이다. 수아레스는 토마스의 입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자이다. 그래서 그는 스콜라 학의 전통을 풍부하게 계승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유비, 존재와 본질 문제 등에 대해서 독창적인 견해를 밝혔다. 토마스에게서 형이상학은 “존재신학”이다. 이러한 의미 규정은 스콜라 철학 안에서 계속 견지되었다. 수아레즈의 이 책은 스콜라철학의 형이상학을 독자적으로 체계화된 형이상학이 근세 시대의 초기에 널리 퍼져있는 강단 철학이 되었다. 세르티 양즈(Antonin-Gilbert Sertillanges 1863년-1948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한 연구지인 『르뷔 토 미스트』La Revue Thomiste를 창간했다. 1900년-1922년까지 파리 가톨릭대학교의 철학교수를 역임하면서 신토마스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다. 세르티양즈는 아퀴나스의 근본 방향들을 프랑스 철학과 지성 생활에 적용시키려는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였다. 아퀴나스를 사회적 또는 미학적 맥락 속에 위치시켰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지성의 능력과 신앙의 가지성 및 조황에 대한 토미스트 관점이 현대적 관점들과의 대화에 부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로는『성 토마스 아퀴나스』,『토마스주의 철학 요강』,『기독교와 철학』등이 있다.
가리구 라그량쥬(Reginald Garrigou-Lagrange: 1877-1964) 도미니코 학파의 전통을 새롭게 취하는 것만이 아퀴나스 신학에 유일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토미즘에 입각하여 경험론과 칸트적 주관주의를 비판하고 네오토미즘을 주창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목적성 원리의 실재주의』, Paris, 1932); 『신비의 뜻과 명확하게 지성적인 것과 불명확하게 지성적인 것, 즉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Paris, 1934); 『신, 그 존재와 본질, Paris, 1915) 등이 있다. 이 저서들에서 그는 토미즘의 신 존재 증명을 설명하면서 불가지 주의(不可知主義, Agnosticism)의 이율배반(二律背反, antinomies)을 해결하려고 한다. 특히 자연 사물에 있어서는 그 존재와 본질이 실제적으로 구분되지만 신에게 있어서는 존재와 본질이 구분되지 않고 동일하다는 토마스 설을 제시한다. 또한 연적 및 신비적 생활의 신학에 관심이 집중했다. 인간은 신이 온 세상을 거룩하게 하시는 부름에 응하는 것이 중요하며, 따라서 觀想 생활과 신비 생활에 이르러 그리스도교 완덕에 도달한다는 취지이다. 그의 영성적 저서는『토마스 아퀴나스와 요한 데 산타 쿠루체에 따른 그리스도교 완덕 론과 觀想 생활,』 Paris, 1923); Les trois conversions et les trois voies『세 가지 회개와 세 가지 길』, Paris, 1933; Les trois âges de la vie intérieure『내적 생활의 세 단계』, Lyons, 1941, 등은 아직 까지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이 저서는 인간 심리학에서의 시작하여 신비적 기도를 가능하게 해주는 성령의 빛 속에서 그 향유를 발견하는 토마스의 영성을 제시하고 있다. 루이 비요(LouisBillot :1846-1931) 그는『신학대전』에 일련의 긴 주석서들을 집필하였다. 아퀴나스의 각 본문들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교부들과 스콜라학적 본문들과 관련하여 대조적으로 비교했다. 그는 주해서 외 저서에서 “긍정신학”.즉 성서와 교부들 연구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의 기본 교리, 즉 유(有, being) 개념의 유비(類比, analogy), 현실태(現實態, Act)와 가능태(可能態, Potency)의 구별, 그리고 본질(essence)과 존재(existence)의 실질적인 구별 등의 철학적 개념을 중점적으로 논술했다. 마지막 구분은 아주 중요하다. 그 창조물에 있어서는 그 본질(essentia)과 그것이 있음(esse)은 완연히 다르고 구별되지만, 신은 그 “본질”과 “있음”이 한 가지이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께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창조물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미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끄 마리땡(Jacques Maritain1882-1973) 신 토미스트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학자 자끄 마리땡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다가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 연구로 돌아서서 토미즘을 현대 사상에 조명하는 데 선구자가 되었다. 그래서 “개방적 토미즘”이라고 지칭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불멸의 철학”(philosophia perennis)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의 여러 저작 가운데 통전적 휴머니즘(Humanisme intégral)은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책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이 현대에 시사성이 있음을 나타내고자 노력했다. 그는 “통전적 휴머니즘”을 통하여 인간을 통전적으로 보려고 하였다. 인간 본성을 왜곡하지 않고 인간의 통전적 차원, 즉, 물질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을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인간의 가치를 신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결망 속에서 복원하는 통전적 휴머니즘을 주장했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인본주의적’ 또는 ‘실존주의적’ 사고방식을 발견하였다. 그의 연구가 스콜라적 해석에 매몰된 절충주의라는 비판이 있지만 토미스트적 종합과 현대 문화 사이의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에릭 프르치와라(Erich Przywara: 1889-1972)는 관념주의와 실존주의가 어떻게 중세 신학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지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아퀴나스는 수아레스주의의 한계에 감금되어서는 안 되고 토미즘이 헤겔이나 딜타이 앞에서 도주해서도 안 되고 주장했다. 그는 존재의 유비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은 있음과 본래 있음의 긴장관계로 드러나며 다른 한편 그것은 ‘창조물’과 ‘창조자’의 긴장관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에서『존재유비』Analogia Entis에서 이러한 ‘존재유비’이론의 긴장 관계로 해결하려고 했다. 즉 그는 창조물이 근본적으로 유비적임을 강조하면서 그들은 ‘신의 존재를 닮았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닮지 않았다’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있음은 긍정적인 반면에 유비는 ‘닮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부정성’에 근거하기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일성과 차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말년에는 비동일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프츠치와라에 의하면 ‘유비’란 모든 앎을 초월하여 인식 불가능한 신을 향한 인간을 이끌어 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셉 마레샬(Joseph Marechal: 1878-1944) 존재와 진리를 향한 지성의 자연적 추동력에 관하여 글을 썼다. 그는 아퀴나스가 인격성의 활동, 무한자의 직관 그리고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것들에 판단을 높이 평가했다. 마레살은 아퀴나스 철학을 기관들의 활동적 목적론 안에 정초하고 있다는 보았던 것을 복원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따라서 조셉 마레샬은 아퀴나스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현대의 현상학과 신 칸트 주의자들의 접근법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삶과 의식, 활동과 사변, 또는 현실과 형상을 분리하기를 거부한 것은 토미스트적의 인식론의 공로로 여겼다. 피에르 루쎌로(Pierre Rousselot: 1878-1915) 마레샬로부터 영감을 받아 아퀴나스에 대한 활력적이고 지성주의적인 이해를 추구한다. 칸트와 헤겔 같은 지난 철학자들보다는 베르그송과 블롱델 같은 현대 생명 철학자들에게 훨씬 더 관심이 많았던 루쎌로는 경험과 시간성을 강조한다. 유비와 신의 존재에 같은 주제들이 외부적 자연학과 존재론의 접근법을 넘는 새로운 접근법을 통하여 검토할 수 있는가에 고민했다. 칼 라너(Karl Rahner: 1904년-1984년) 그의 철학박사 학위논문인『세계 내 정신』(1939, ed. 2, 1957)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저서는 칼 라너의 중요한 기본사상이 담겨있다. 여기에서 칼 라너는『신학대전』의 몇 개 항들을 현대 철학의 쟁점들과 관련지어 논했다. 이 책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각론(知覺論)을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파악되는 지적인 실재라고 실존주의 용어로 말하면서 인간의 주체가 존재의 수평선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보았고, 그 존재적 수평선의 최종적 결정 요인은 신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칼 라너는 실재를 바라보는 신 스콜학적 방식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 사상을 배격하였으며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이 근대성의 동기들과 대립된다는 거부 하였다. 그는 아퀴나스를 단지 반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사고 형식 들 속에서 기독교를 표현하고 사회와 교회의 현대적 문제들을 대처하기 위해서 아퀴나스 신학의 몇몇 핵심적 명제를 활용했다.
고르넬리오 파브로(Cornelio FabroCornelio Fabro: 1911–1995)는 현대의 토마스의 철학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가로 큰 업적을 남기었다. 그는 토마스 철학의 잘못된 해석을 바로 잡는 일을 담당했으며 특히 존재에 대한 토마스 형이상학을 발견하는데 기여하였다. 토마스 철학 안에 있는 자유의 관념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하였다. 물론 그의 사상은 또 다른 토미즘 학자들로부터 불신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파브로의 자유에 사상은 여러 가지 설명을 그의 저서“자유에 대한 성찰들” 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별히 토마스의 ‘유비’에 대한 해석은 다른 학자들과 다르게 ‘수평적 차원의 유비’ 그리고 ‘수직적 차원의 유비’이다. 전자는 유비를 현실 세계 안에서 연구되는 사물들의 관계를 말하고 후자는 창조물과 신과의 관계에 대한 이름들을 존재론적으로 다룬다. 카예타누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그 이유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한 많은 20세기가 되면서 비판을 받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카예타누스는 그의 저작『명칭들의 유비』를 통해 토마스의 ‘유비’를 속성의 유비(의향에 따르는 유비), 불완전한 유비(존재에 따르는 유비), 비례성의 유비(존재와 의향에 따르는 유비)로 분류하였다. 비례성 유비만이 가장 중요한 유비라고 주장한다. 랄프 맥키너니(R. McInerny) 노틀담 대학의 철학 교수 맥키너니(R. McInerny)는 토마스가 신학자이면서 철학자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리고 토마스의 ‘유비’를 중세에서 빌려온 논리학적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 위펠(John. Wippel)이 말하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맥키너니는 ‘유비’를 특정한 본문만을 한정해서 해석하여 논리적 개념으로만 해석했다. 그러나 필자는 토마스에 관해 서술된 ‘유비’는 토마스의 철학 전체의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본다.
존 위펠(John F. Wippel)은 ‘존재자의 유비’가 창조물과 신의 관계에서 신은 창조물의 원인이며 창조물은 신의 결과이라는 관점을 고수한다. 즉 결과가 원인에 참여하는 ‘인과적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 우주 전체가 존재를 자신의 본질로 소유하고 있는 신을 중심으로 거대한 존재의 연결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신은 모든 존재의 원인이고 모든 존재자는 신의 존재에 참여함으로써 존재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존 위펠의 견해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의 전체의 연결 안에서의 ‘유비’를 해석했기 때문에 ‘유비’가 존재론적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토마스의 ‘유비’은 궁극적으로 ‘신(神)’에 대한 서술이다. 철학적 개념인 ‘유비’는 신에 대한 진술 방법으로 적합하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전체의 도구는 아니라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존재론적 관점으로 ‘유비’는 토마스의 철학과 신학을 연결해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것은 인간이 신에 대한 접근할 때 가장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JD 카푸토 Caputo, John D, 마르틴 하이데거와 토마스 아퀴나스: 형이상학의 극복에 관한 시론 Heidegger and Aquinas 이 책은 부제 (형이상학에 관한 시론)에서 말해 주듯이 하이데거와 아퀴나스에 있어서의 형이상학의 의의와 한계를 밝혀보려는 책이다. 이러한 의도를 위해 저자가 택한 방법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주요 개년과 아퀴나스 형이상학의 주요 개념을 대결시키는 방법이다. 이 책은 3가지 중요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여기에서 존 카푸토는 하이데거의 가톨릭적 배경과 초기의 저술과 역정이 상세히 소개한다. 두 번째로 스콜라학에 관한 하이데거의 전기 후기의 비판을 잘 정리되어 있다. 세 번째로 하이데거와 토마스의 관계를 논한 이전의 주요한 논의들이 검토되고 평가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에크하르트는 거의 동시대의 사람이다. 물론 토마스가 에크하르트보다 조금 앞서서 태어났기 때문에 에크하르트는 토마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당한 양의 에크하르트의 저서에서 나타나는 사상 역시 토마스 아퀴나스의 흔적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에크하르트는 현대 철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사상적 자료를 공급해주고 있다. 우리는 에크하르트를 알기 위해서는 토마스를 먼저 알아야 할 만큼 중요한 만큼 두 사람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본 절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토마스와 에크하르트의 연결고리의 공통과 차이를 고찰함으로 우리가 알지 못한 두 사상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토마스에 의하면 직관은 앎의 최고의 형태이며 인간에게 가능한 존재의 최고 양태이다. 그것에 의해 사람들은 신 자체와 합일된다. 인간의 목적은 신을 봄(visio dei)이고 이것은 “신을 순수하게 현재에 가짐”이다. 사랑으로 신을 지향하는 의지는 지성과 마찬가지로 신을 현재에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직관은 후설이 지적하듯이 충만함이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완전한 대상에로 향해진다. 이것이 신적인 존재자의 지성적 직관이다. 토마스에게서 지성 작용은 현재 가짐의 하나의 방식이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현전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토마스의 철학이 형이상학, 형이상학적 신학, 그리고 신비적 신학이 존재를 현전으로 보고 사유를 현전의 바라봄(intuitus)으로 보는 범례들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형이상학을 극복의 커녕 오히려 신비주의는 형이상학의 정점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적인 경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향성은 표상적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성적이고 추리적인 논거를 버리고 더욱 깊은 합일에로 들어선다. 토마스의 해체적인 해석에 있어서 또 하나의 발걸음을 내딛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비록 이성이 지성에 이른다는 것과 지성이 신비적인 합일의 장소라는 것을 보여 왔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신과 영혼의 합일은 여전히 봄과 현전의 형이상학에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더 이상 개념적인 봄의 문제가 아닐지라도 그리고 현전 하는 것이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도 참이다. 우리가 루쎌로의 종교적 지성주의나 토마스의 황홀이라는 언설에 집중하는 한 토마스 존재 이행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은 여전히 미지수이다. 이런 면에서 토마스의 언설은 “현실성”에 속하지 않고 사유이며 또한 사유에 들어있는 “가능성”이며 회복의 해석학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존 카푸토 의하면 에크하르트에게 신의 존재가 현전인 동시에 부재이고 부재 속의 현전이자 현전 속의 부재라는 점이다. 또한 창조된 “지성”은 봄의 문제가 아니라 내버려 둠과 신비에로 개방되어 존재의 문제이다. 신적인 심연(Abrund), 무(das Nichts), 내맡김(Gelassenheit)에 관한 말에 하이데거 자신이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러한 말은 독창적인 에크하르트의 어휘에 속한다. 에크하르트 저서의 많은 부분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제들을 가지고 요리한다. 토마스의 어휘를 가지고 신비적 단계들로 몰아가기도 하고 철저하게 압축하여 신비적인 의미를 산출한다. 이것이 토마스의 저술 속에 말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에크하르트는 루쎌로, 마레살, 마리땡같이 토마스 저술 안의 신비적 요소에 대한 주석가가 아니다. 토마스로부터 자신의 영감을 이끌어낸 사람으로서 신비적 삶에 대한 실천자였다. 베르나르 벨테가 언급하기를 토마스 안에서 가능성이 에크하르트 현실 속에서 전개된다. 그런 이유로 토마스에 대한 해체적 해석이 루쎌로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면 그러한 해석은 에크하르트에게서 초점을 맞출 때 완성될 수 있다. 에크하르트 신비적인 손에 영향을 받아 존재와 지성이 모두 변형되는 변화를 겪는다. 이 변화 속에서 신비적인 의미가 마침내 명시적으로 된다. 에크하르트는 존재가 신이라고(ess est deus) 말한다. 이러한 면은 신이 그 자신의 있음의 현실이라는 (deus est suum esse) 토마스의 논제가 더욱 철저화된 해석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는 창조물이 신의 순수 존재에 철저히 의존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가 한 편으로 신의 존재의 벌거벗은 빈곤과 황무지에 관해 말한다면 토마스는 지성의 빈곤과 무성으로 이해한다. 지성이 토마스에게 있어서 직관을 의미하다면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그것은 “초연”(detachment)을 의미한다. 여기서 에크하르트가 자신의 설교에서 말하고 있는 해체는 형이상학의 해체이며 바로 신비적 해체이다. 왜냐하면 그는 신비적으로 지성이 초연, 벗어버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철학적으로 지성이 공허, 개방성의 의미를 언급하기 때문이다. 지성적 영혼과 자아가 하나 될 때 자신의 모든 이미지들, 자신의 모든 욕망들과 마음들을 벗어버리고 신만이 그 안에 들어설 수 있는 순수하게 열린 공간으로 되었을 때이다. 그런 까닭에 에크하르트는 지성을 종교적인 초연으로 변형시킨다. 초연은 내맡김(Gelassenheit)이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충실하게 철저화된 지성의 의미는 내맡김이다. 여기서 지성과 존재에 대한 토마스의 신학이 암묵적으로 신비적인 의미가 명시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하이데거로부터 토마스에로의 연결다리이다. 내맡김에 있어서 영혼은 그 자신을 신의 존재에 일치된다. 영혼이 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신에게 내어 맡긴다. 거기에는 신을 봄의 문제가 아니다. 그 분에게 모든 것을 내맡김의 문제이다.
은폐의 차원, 은폐와 숨음의 요소는 오직 내맡김이 언설 안에 유지된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문제들을 내맡기고 개념들로부터 지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토마스는 밝음에로의 상승, 빛에서 빛에로의 이행이라면 에크하르트는 도리어 신의 심연, 미지의 것에로의 하강을 의미한다. 무와 신비주의는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인간의 우상이나 형이상학적 실체와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것은 초연이다. 초연은 확실성과 투명성의 환영을 부순다. 무와 신비주의는 신이 말하도록 하기 위해 주관성의 우상들에게 눈과 입을 닫은 채로 비밀을 전하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토마스의 신학이 지닌 무미건조한 글 안에서 하나의 역동적 무(無)와 신비주의를 발견했다. 토마스에서부터 곧바로 에크하르트 의 설교 에로 연결되는 여러 개의 고리가 있다. 존재가 신이라는(ess est deus) 이 말도 에크하르트의 무(無)와 신비적인 공식 아래서 신은 그분 자신의 있음의 현실(deus est suum esse)이라는 토마스의 언설이다. 에크하르트의 영혼근거(Seelengtund)론에서 영혼이 그 자신의 기능들이 흘러나오는 그런 근원이라는 토미즘적 영혼 실체론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면 토마스의 이성의 작은 불꽃(scintilla rationis)은 에크하르트의 “영혼의 작은 불꽃” 명백한 전신이다. 그리고 아들의 탄생에 대한 에크하르트의 사상도 토마스의 은총과 연결되어 있다. 이같이 에크하르트의 논리에 의하면, 신성과 신은 각각 잠재적 가능성(potentiality)과 현실성(actuality)으로 구분된다. 바로 이 점에서 에크하르트는 많은 신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데니플레 같은 중세 사학자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노선을 따라, 신을 모든 가능성을 지닌 ‘순수 현실태(actus purus)’로 이해했다. 이것은 에크하르트가 신성과 신의 구별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기에 오는 비판이다. 그러나 에크하르트는 신성에서 결정되는 부성(父性, fatherhood)과 ‘아버지(Father)’의 인격에서 형성되는 ‘아버지 됨(paternity)’의 관계를, 동정녀(Virgin)에게 주어지는 모성(母性, maternity)과 잉태함으로써 부여되는 모성 사이의 관계로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재성과 현실적 실재성의 차이를 보게 된다. 즉 가능성으로서의 신성과 현실성으로서의 신의 구별을 부성과 모성의 비유를 통해서 보게 된다. 에크하르트는 두 개념이 분명히 서로 구분됨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크하르트 사상은 보다 독창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에크하르트의 신비사상은 더욱 깊이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리고 아들의 탄생에 관한 에크하르트의 언설도 많은 부분이 토마스의 언설인 은총과 연관되어 있다. 에크하르트는 또한 황홀에 관한 토마스의 물음도 인용한다. 에크하르트가 종교재판에서 자신을 고소한 자들에게 토마스 형제의『신학대전』에서 가르친 것만을 말했다는 말로 논박했을 정도였다. 이것은 토마스 안에서 말해지는 것이고 따라서 존재자-신-논리학이 포장이 벗겨진다. 그리고 신비적인 결론에 추진된 것이다. 이처럼 토마스의 ‘지성’과 ‘이성의 작은 불꽃’을 볼 때 토마스가 존재와 무 그리고 신의 공속성을 이미 담지하고 있으면 토마스가 출발점임을 알 수 있다. 토마스와 하이데거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토마스와 하이데거 둘 사이의 문제는 하이데거가 토마스를 공격함으로 시작된다. 하이데거는 토마스 신학을 “존재망각”이라는 관념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필자가 보기엔 그 이유는 존재자(ens)에 초점을 맞추고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오해이다. 그렇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와 하이데거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퀴나스에게 잠재적이고 에크하르트에게서 신비적 경향성을 하이데거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두 사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것은 아레테이아(비은폐성) 안의 레테(은폐성) 중요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의 은폐성, 곧 존재자들이 거기로부터 현전으로 나오는 그러한 철회된 심연은 어떤 최종적인 것이다. 이런 암흑에 빛을 비출 수 있다고 기대될 수 있는 심오하고 깊은 차원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신비적 심연에 대한 사유의 개방성은 내맡김이다. 내맡김은 사람들이 취할 수 아주 궁극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토마스에게 암묵적이고 에크하르트에게는 명시적인 무(無)와 종교적 신비주의에 있어서는 경우가 같지 않다. 왜냐하면 주체에게 있어서 암흑의 심연은 신의 신성 자체의 심연이기 때문에 만약 그 심연이 우리에게 보여지지 않고 숨겨진다고 해도 그것은 신성 자체로부터 숨겨지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신성의 심연 위에서 신은 그분 자신에게 알려지기 때문이다.
여기 신성 자체에 있어서 있음과 앎의 은폐된 통일성이 지배하는 데 그 통일성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은 수도 없다. 신 안의 심연과 신비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있지만 신에 대해서는 그리 할 수 없다. 신은 신비이지만 그러나 신은 신비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신비적이지 않다. 신성의 은폐된 심연은 신에게는 은폐되지 않는다. 그 암흑의 심연이 바로 신이다. 거기서는 인간의 어떠한 개념도 명명할 수 없다. 그리고 불가해성 자체이다. 여기서 신의 말씀이 발언된다. 종교적인 내맡김은 신비에의 개방성이다. 그러나 신비는 자신에게는 은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개방성, 자기-현전의 권역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신앙이다. 신앙인에게 신이 언제나 심화되어가는 신비이며 암흑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비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는 어떤 믿음의 갖는 암흑이다. 비록 헤아릴 수 없지만 하나의 사랑의 손길이 있는 암흑이다. 종교적 주체에게 있어서 존재자-신-논리학의 용어로 묘사할 때 신이 우리에게 신비이지만 자신에 대한 신비는 아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는 자기-앎이 가능한 한 인격이 아니라 인간 앎 속에서 인간의 앎을 통해서만 자기 개방을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존재는 언제나 원칙적으로 하이데거에 있어서 우리에 대한 존재로, 즉 인간의 앎과 공속에 있어서 존재로 간주된다. 하이데거의 앎은 경험적이고 유한한 관점으로 회복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자체적인(quoad se) 존재에 관해서는 심지어 신앙의 불확실성으로써 조차도 가능성이 없다. 존재는 언제나 앎과 공속에 있어서의 존재이다. 따라서 존재와 앎 모두가 이것들의 회복 불능적으로 유한한 의미에 있어서만 받아들여진다.
이점이 왜 하이데거가 존재는 앎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존재가 자신의 자기 개방을 위해서 앎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하이데거에서의 존재는 자신을 인간의 앎 안에서 인간의 앎을 통해서 개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는 언제나 유한하고 인간을 필요로 한다. 이에 반하여 종교적 신비주의자의 존재는 신의 충만함이자 충분성이다. 하이데거 있어서 “신”은 이러한 트임 안에서 현상하거나 또는 이러한 뜨임 안에 있지 않은 채로 머문다. 그러나 신이 뜨임 자체는 아니다. 트임이 신의 선물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토마스 언설의 정점에 놓여있는 존재와 지성의 단순한 통일성은 본질적으로 시간과 역사를 넘어서는 것으로 발견된다. 이러한 합일(unio)은 가장 완전하게는 영원 속에서 일어나며 또한 신의 나라에서 즉 시간을 초월하는 영혼의 본향에서 일어난다. 토마스와 에크하르트에게서 있는 신과의 신비적 합일이 하이데거에 있는 존재와 앎의 공속과 혼돈될 수 없다. 토마스에 의하면 신은 역사적인 트임의 한 함수가 아니다. 오히려 신은 시간을 지배하고 역사의 주인이다. 창조된 세계는 신적인 존재의 모방이고 창조물의 목표는 에크하르트가 언급했듯이 창조되기 이전에 신의 마음속의 이데아에 불과할 때 신에 대해 지녔던 원초적 합일을 통하여 회복하는 것이다. 창조는 복귀에 의해 뒤따라져야 한다. 이 점이 신학대전과 에크하르트의 설교들의 건축술적 원리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의 신은 사건에 의해 허용되어야 한다.
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 신에 대한 사상 즉 신 존재증명에 대한 현상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벨테는 현대 철학 맥락 속에서 토마스를 재해석한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토마스 해석의 방법론적인 착상은 벨테의 초기 논문 “신 존재 증명과 종교현상학”(1953)과 많은 연관을 갖고 있다. 방법론적인 착상이란 사유와 관련된 것인데 벨테는 토마스 해석에서 존재-신학으로서의 형이상학적 틀 안에서 형이상학적 사유에서 현상학적으로 스스로를 보여주는 사유이다. 이 사유의 근원으로 즉 형이상학적 질문에서는 결코 사유되지 않는 다. 벨테의 일차적 관심은 토마스의 존재론을 현상학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자신이 지향하는 고유의 사유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삼는다. 토마스와 논쟁하는 주제는 경험이다. 이 경험은 과학으로는 고찰할 수 없는 경험이다. 즉 “감각적으로 보증할 수 없는 경험이며, 무한한 신비, 우리를 무제약적으로 요구하는 신비와 자기 자신이 관계되어 있는 경험”이다. 벨테는 이 경험에 대한 고찰을 언어적으로 차이를 뚫고 지나가 “토마스의 사상의 중심과 사상적 근원을 고유한 원천으로부터 따라잡는 방법”으로 실행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은 신 존재 증명에 관한 칸트의 비판뿐만 아니라 신에 관한 과학자 검증 혹은 반증 가능성과 전혀 무관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토마스의 신 존재 증명의 배후에 근본적으로 무엇이 은폐되어 있는가? 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다섯 가지 길에 대한 다양한 설명은 본래 “유일한 근본 사상을 전개하고 예증한 것”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벨테는 이미 이 근본 사상을 토마스 초기작 “존재와 본질에 관하여”(de ente et essentia)에서 짧고 간결하게 표현된 문장에서 발견된다.
만물이 그것을 통하여 존재의 원인에 이르는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그 자체가 존재일 뿐이다. 만일 존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원인의 순서가 무한히 소급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말한바와 같이 존재 자체가 아닌 모든 존재자는 그의 존재자는 그의 존재를 위한 원인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존재 자체”(esse lanlum)와 “존재 자체가 아닌 존재자”(res, quae non est esse lanlum) 사이의 “참여”(Teilhabe)와 “거리”(Distanz)가 문제가 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다.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은 이 양자 근본 규정에 대한 관계에 대하여 다룬다. 힌즈케(N. Hinske)는 한 논문에서 신 스콜라 주의자들 일반적인 이해와는 다르게 “토마스 신 존재 증명에는 우유의 개념이 아니라 참여와 거리와 같은 개념이 근간을 이룬다.”라는 논제를 말한다. 그러나 “존재 자체”는 존재하는 것에 다가가는 존재자 자체의 초월자이다. 존재자는 존재 자체(ipsum esse)에 의하여 존재한다. 여기서 술어 “존재”에 존재론적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 존재자와 존재자의 이해의 척도, 규범, 바탕에 대한 존재자의 차이, 즉 자기를 통하여 자기로부터 존재하는 존재와 존재에게서 파생된 존재자 사이의 거리이다.
존재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다른 보편적인 것보다 더 포괄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비교적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원칙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존재는 보편적인 것의 보편성의 근거이다. 존재는 근원적으로 포괄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온갖 것들은 실제적인 존재이건 단순히 가능적인 존재자이건 존재가 그에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벨테는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차이에서 신 존재 증명의 다섯 가지 길에 공재하는 출발점을 읽는다. 우선 다섯 가지 길은 각각 상황을 암시하며 그 상황 속에서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이 ‘존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하여 차이를 그때마다 상이한 형태로 유효화한다. 다섯 가지 길에서 존재에 대하여 존재자가 갖는 그때마다의 독특한 차이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길의 출발점은 그 시기마다 항상 다른 방식으로 알려주는 존재론적인 차이에 대한 암시이다.” 존재자 자체는 한편으로 무한한 존재를 생각할 수 있는 현상적 장소이다. 반면에 존재의 무한적 신비는 존재자와 인간을 규정하고 담지하다. 인간에게 무한한 놀라움을 주고 물음을 던진다. 모든 인간의 앎과 정신적 활동은 존재자와 직면하여 생기는 놀라움과 물음에 기인하며 그리고 이 놀라움과 물음은 다시 존재 자체의 신비한 척도에 유래한다. 그러므로 존재자는 존재와 무한히 구분될 뿐만 아니라 또한 이미 존재에 참여한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경이감과 존재 물음에서 자신을 알리는 존재는 모든 존재자가 생각되고 구성될 수 있는 “존재” 진술의 근본형식 너머에 있다. 그러므로 존재는 생각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으며 진술할 수도 없다. 존재는 침묵에서만 등장한다. 그러나 벨테는 말할 수 없는 이것을 성스러움이라고 말한다.
“절대적 높이와 절대적 서열과 절대적 순수성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멀찌감치 비켜가 있으며 그렇지만 우리 자신과 존재 전체를 가장 내면에서 포괄하는 자, 그리고 우리와 침묵과 기도 속에서 관계하는 자를 우리는 성스러움이라 부른다.”
지금까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의 근본 사상을 종교의 현상적 출발로 고찰할 수 있는 존재론적인 여벽을 두었다. 다섯 가지 길에서 존재자는 항상 거듭 물음에 처해진다. 존재자는 무한한 물음의 행렬 속에서 위태하고 무화되기 쉽다. 벨테는 여기서 존재자와 존재 사이의 모순과 긴장이 생긴다. 이 모순과 긴장은 포괄적인 무한성과 무규정성 속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물음은 무한정 계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존재자이며 오히려 무가 아닌가?” 존재자의 모순을 심화하는 것은 존재자의 현실성이다. 벨테는 두 개념 사이의 연결고리를 말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분석의 결과를 말한다. “토마스에게 철학적 사유를 통하여 도달된 존재 자체에 관한 규정은 현상적 의미 내용에 따르면 그 자체에서 볼 때 결코 신 개념과 동의어가 아니다.” 이 사유의 과정에서 토마스는 충분한 근거나 해명 없이 존재자의 타자에 대한 형이상학적 지칭에서 본질적-종교적 내용인 신에게로 옮겨간 것이 눈에 띈다. 어떻게 증명에서 철학적으로 규정된 것이 종교적 신가 일치할 수 있는가? 어떻게 철학적 신인 “존재자체”(ipsum esse)가 신앙의 신인 “우리의 신”으로 동일시 될 수 있겠는가? 쿠사는 사실상 “종교적 이름인 신은 모든 존재자의 초존재적 근거인 존재 자체에게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의미 내용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존재론적인 차이 외에 존재 자체와 신 사이의 “현상학적인 차이”를 언급해야 한다. 존재 자체와 신은 그 뒤에 동일시하지만 양자 사이의 차이가 결코 간과되거나 부인될 수 없다. 이 문제는 새로운 사유 방식으로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 존재 증명에서 중요한 관심은 철학적 논거 확립의 문제가 아니다. 사유의 초월적 운동이며 사유의 지향점(Woraufhin)이다. 이것이 벨테의 토마스 해석에서 발견되는 요점이다. 벨테의 관심은 토마스 신 존재 논증을 형식 논리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토마스가 자신을 스스로 보여주는 영원한 신비에 마주하여 사유하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벨테가 토마스에게서 본 것은 토마스가 형이상학적 언어로 구성한 종교적 근본 과정이었다. 비록 사변적 언어로 표현되었지만 이 언어 배후에는 있는 근본 현실성의 경험은 종교적 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벨테는 토마스의 철학적 신 존재 증명에서 종교 일반의 토대가 놓은 것으로 본다. “신 존재 증명에서 이론적으로 구성된 철학적 증명과 더불어 성스러움과 종교 일반의 토대가 놓였다.” 그러므로 성스러움의 종교는 실제적으로 이론적인 신 존재 증명을 통하여 접근 가능하다는 주장은 사태에 부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이론적 형태의 신 존재 증명은 종교와 근본적 종교적 의미 내용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인간은 신에 대하여 물을 수 있기 위하여 신이 어떻게 존재인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그러므로 탈 형이상학적 신 사유는 “존재 자체”와 “신” 사이의 현상학적 차이가 근원적으로 연구되어 밝혀지기를 기대할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 개념을 근원적 경험의 시각에서 현상학적으로 새롭게 숙고한다. 벨테는 “신이 존재한다.”(Deus est)는 명제가 말하는 내적 참여의 실존적 특성을 부각해 말한다. “자기 존재의 깊이에서만 자기 존재의 무한정한 투입에서만 존재 자체의 초월자가 존재론적, 근원적으로 지각되고 긍정될 수 있다. 자기 존재의 무제한적 실행을 통해서만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의 길이 인도한 그것이 획득되고 파악될 수 있으며 본래적 의미에서 온전하게 전개되었다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적 언어의 한계선 위에서 종교적 현상선과 그 안에 담겨 있는 종교적 신을 해독하면서 동시에 종교에서의 형이상학의 극복에 관하여 암시하였다. 이러한 의도 때문에 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광범위한 합리적 개념성을 수단으로 신학 한 형이상학의 개념의 신학의 아버지”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러한 표상이 신에 관한 토마스 사유의 한 측면”임을 강조한다. 토마스는 거듭 반복하여 “신은 그 어떤 존재 방식으로 있는 자가 아니며” Quod Deus non sit in alique genere,b“우리는 신에 관하여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 알 수 없다” De Deo scire non possumus quid sit, 고 명제적으로 주장하였다. 벨테에 따르면 이 명제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근본 명제이다. 신은 “ 결코 존재자가 아니다. 그리고 신은 ‘존재’ 하지 않는다. 이 뜻은 다음과 같다. 존재가 신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왜 다가가지 않는가? 신은 모든 다가감 이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서 존재성은 떨어지고 엄격한 의미에서 존재자가 아니고 또한 존재자의 존재도 아닌 존재가 맞닿게 된다.”
신은 “모든 개념적 파악으로 가능한 진술이나 판단 밖에 존재한다. 신은 파악할 수 없는 분, 말할 수 없는 분이다.” 신은 초 범주적이며 탈 범주적이다. 신은 존재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는 신에게 도무지 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본래적 의미에서 사물 res이나 어떤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에게는 그의 존재와 구분될 수 있는 본질-존재(was-sein)가 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도대체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존재’ Ist는 그것에 아무것도 귀속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은 이미 존재 자체이다. 신은 사물이나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신은 어떤 것이 아니거나(Nicht-etwas) 무(Nichts)이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진술을 엄격하게 말하면 참이고 동시에 거짓이다. 그리고 항상 부과와 종합을 생각하는 존재자에 대한 존재의 사유는 존재 자체의 단순성이 가진 심연에서 필연적으로 ‘파선’하고 만다. 신은 모든 존재자를 넘어 계신 신비이다. 신은 모든 류 개념과 온갖 방법을 초월해 계실 뿐만 아니라 모든 류 개념의 원리로 서 모든 방법을 시작하게 하는 시작이다. 도대체 신은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사유가 아닌 언어 영역 밖에 계시기 때문에 토마스는 신의 존재에 맞갖은 사유방식, 즉 “접촉하는 사유” 을 발전시킨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을 파악한다는 것은 모든 창조된 영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을 접촉하는 일은 영에게 최대의 지복이다.” 이 문장은 토마스가 사유 안에서 더 이상 붙잡아 세우거나 앞에 세울 수 없는 것을 제시하면서 형이상학적 사유의 극복을 시도할 때 등장한 결정적인 근본 사상이다. 벨테는 이러한 맥락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 개념 (per se subsistere)가 왕왕 주장되듯 그렇게 형식적이며 정태적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면서 추정되는 중세의 존재론적 철학의 한계를 다시 검토할 수 있기를 제안한다.
벨테에 따르면 토마스의 “존재”는 자기 원인 causa sui이라는 의미에서의 폐쇄된 원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건”이다. “존재는 존재자가 있기 때문에 생기한다. 존재자는 존재가 생기하기 때문에 있다. 존재자의 존재는 이러한 착상에 맞게 사건과 유비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사건에는 출구와 목표 사이에 분리가 생기며 능동과 수동 사이에 분리가 일어난다. 이것이 삶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삶에는 단순한 동일자에로의 분리와 회귀가 주어진다.” 그러나 토마스가 “소극적인 길”의 원칙적인 우위를 알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적극적인 의미의 포괄적인 형이상학의 신론”을 전개하였다 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킨츨러 (K. Kienzler)가 옳게 인식하고 있듯이 벨테는 “형이상학의 사유가 아직 견고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유동적인 곳에 이르기까지 보고 느끼며 초월자의 숨겨진 근거가 명백하게 되는 차원에 이르기 까지 파고 들어갔다.” 킨츨러는 벨테에 대하여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나는 벨테와 같이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부정 신학의 물밑 흐름을 거듭거듭 제시하는 가톨릭 신학자를 알지 못한다.” 벨테의 제자인 카스퍼는 벨테가 토마스를 그의 제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시각에서 해석하였으며 하이데거의 의미에서의 존재 물음이 토마스에게서 단순히 잊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토마스 형이상학과 학문체계는 “접촉하는 사유”에 그의 본질적 자리가 있다. 또한 여기에 아직 형이상학의 극복 가능성이 잠자고 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사유의 길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다. 그 이후에 전개된 스콜라 신학과 철학은 토마스의 시원적 사유를 중요하게 여기지 못하고 “고집스러운 개념 형이상학”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토마스의 사상적 착상을 철저히 전개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은 범주로 이해될 수 없다” (Deus non sit in alique genere) 고 말하였다. 에크하르트는 토마스의 이 사상을 “신과 무는 동일하다.”라는 통찰로 철저히 밀고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신과 무는 공속적이라는 토대를 놓았다.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 장 뤽 마리옹(Jean-Luc Marion)은『존재 없는 신』(God Without Being)으로 유명하다. ‘존재 없음’이라는 말로 가톨릭에게 오해와 비판을 받았지만 반대로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매섭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 신론 비판을 이어받아 특수 형이상학적 신 담론을 해체하고 탈 형이상학적 신 담론을 모색한다. 마리옹은 전통적 신 담론이 형이상학적, 존재 신론적 해석을 비판하면서 신의 명칭을 성서를 토대로 재해석을 시도한다. 마리옹은 신이 다른 존재자들의 근거로서 ‘자기 원이’ 또는 ‘최고 완전한 존재자’처럼 존재론 개념으로 사유되면서 인간의 존재 물음에 파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 자체의 초월성, 신비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다. 마리옹은 출애굽기 3장 14절을 해석하면서 “hayah” 해석하면서 여기에 존재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오류라고 주장한다. 마리옹은 기독교 철학이 존재와 선을 분리하는 전통에서 멀어지면서 신을 형이상학의 대상으로서 존재나 존재자로 말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비판한다. 마리옹은 이러한 기원을 출애굽기를 해석하는 토마스에 있다고 본다. 토마스는 존재와 선이 구별되지 않는 채 사유된다.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볼 수 있다. “선은 존재자에 사실상으로나 개념상으로나 어떤 것도 더하지 않는다.” 또한 “신의 선함은 그 실체에 덧붙여지는 어떤 것이 아니며 그 실체 자체가 선함이다.” 여기에 대해 마리옹은 아퀴나스는 실체로서 존재와 선을 분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서양 철학이 신을 최고 존재자와 최고선을 결합으로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 것과 비슷하다. 마리옹에 따르면 질송이 보여준 출애굽 형이상학의 발단 배경이 된다. 토마스가 “이 존재하는 자라는 것이 … 신에게 고유한 이름이다” 라는 토마스의 이 구절을 문제 삼으면 토마스는 존재자의 우위성을 정립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의 이름이 앎의 대상으로 전락된다고 보고 있다. 마리옹은 또 지적하면서 “개념상으로 존재자는 선에 선행한다. … 그러므로 지성의 파악에 먼저 오는 것이 개념적으로 선행한다.” 마리옹은 이런 입장의 토마스를 비판하기를 “존재자(ens)를 인간의 지성의 대상으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상으로부터 출발해서 해석하는 일을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존재자는 인간에게 파악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위 디오니시우스 신비주의의 전통과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우상숭배의 혐의를 벗기란 어려운 일이다”는 논지이다. 여기서 마리옹이 언급하는 우상숭배는 신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 내는 일련의 작업을 일컫는다. 이 작업을 위해서 “곧 우상은 인간의 시선이라는 척도에 신적인 것을 떠 안겨 버린다.”
이러한 우상이 우상을 만들려는 철학자의 시선에 맡겨질 때 “신을 신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경험의 조건으로 속박”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마리옹에게 아퀴나스는 신에게 존재라는 명칭만 요구하며 그리고 그것을 지성의 대상자로 간주하는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자로 간주한다. 그런데 필자는 마리옹이 뒤늦게 잘못된 해석을 인정했다 할지라도 처음 마리옹의 관점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신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존재자(ens)보다는 존재 자체(ipsum esse)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존재자(ens)와 존재(esse)의 구별은 중요할 뿐 아니라 토마스의 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마리옹도 뒤에 이 사실을 인정한다. “실제로 나의 입장은 1982년 이후 두드러지게 바뀌었으며 또한 나는 오늘에 이르러 토마스 아퀴나스가 존재와 연련 해서 신에 대한 물음 또는 신의 명칭에 대한 물음을 확증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역설을 지지한다.” 토마스는 이제 신은 존재 자체 인임과 동시에 존속적 존재 자체이며 존재와 본질이 일치하는 존재 자체이다. 따라서 인간의 앎은 존재 자체로서 신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마리옹은 불가해성의 신에 대한 토마스의 말을 주목한다.
또한 신성한 네 문자(tetragrammation)가 가장 고유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해성을 의미하며 만일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특이한 존재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마리옹은 아래와 대답한다.
이로부터 명백한 역설이 따라 나온다. 즉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빌려온 이름의 독특성과 우월함은 바로 신에게서 현시되는 배타적인 불가해성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마리옹은 신에 대한 명칭을 긍정 신학뿐만 아니라 부정 신학 신학의 의미로서 진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진술은 마리옹이 토마스 아퀴나스가 언급한 “그 본질 자체인 신의 존재는 공통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로부터 구별되는 존재이다.” 여기서 토마스는 이 공통 존재와 구별되는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존재 자체는 불가해성함을 말한다. 마리옹은 드디어 아래와 같이 진술한다.
실제로 이 결론보다 엄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일 한편으로 형이상학의 존재가 그것이 창조된 존재자에 타당한 것이며 그 가지성로부터 그 우위성이 도출된다. 만일 다른 한편으로 신의 존재가 반대로 형이상학의 존재에서 벗어난다면 신의 존재는 형이상학의 가지성에 해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본질적 양분을 통해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먼저 모든 존재의 일의적 개념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더 존재-신-론의 가장 핵심을 단념한다. 즉 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행위자는 정초들의 이중성(개념적이고 작용적인)이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공통 규정 내에서 상호적으로 서로 정초 하는 데 참여해야 한다. 공통 존재자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따라서 존재로서의 존재자와 신 사이에 무엇보다 가지성이 아닌 공통적인 어떤 것을 도입할 수가 없다.
이처럼 장 뤽 마리옹도 토마스를 재해석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이 단지 긍정 신학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과 부정의 상호 역설적 얽혀 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유비 이론에 대한 연구하는 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학자 외에 데이비드 버렐이나 마크 조던과 같은 학자들은 신의 불가해성을 주장하며 신에 대해 어떤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프랭클린 갬웰과 같은 또 다른 사람들은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점을 부각하면서 성서적인 교훈을 주장함으로 신과 창조물에 관한 긍정적인 용어들을 일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필자는 유비를 해석에 있어서 버렐이나 조던, 그리고 로카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연구에 대한 최근 경향을 종합적으로 보면 첫 번째는 근대적 학문과 과학의 결과를 대체적으로 완만하게 수용하는 입장을 보이는 메르씨에(Mercier)와 뤼벵대학 토미스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두 번째로 근대적 학문과 과학의 결과를 적극적 수용의 입장은 가진 학자로 마레샬(Marechal), 지베르트(Gustav Siwerth), 로츠(Johanne Baptist Lotz), 라너(Karl Rahner), 코레트(Emerich Coreth), 로너간(Bernhard Lonergan), 파브로(Cornelio Fabro)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근대적 학문과 과학의 수용뿐만 아니라 토마스 사상의 통합이 토미즘 원래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보는 분류이다. 이 분류는 전통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입장으로 질송(Etinne Gilson), 등을 주축으로 형성되었다. 2016/11/06 혜윰인문학연구소 뜨르
'▣혜윰인문학▣ > 종교철학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esse), 유비(analogy), 그리고 부정성(不定性)의 재해석 필요성 (12) | 2023.04.20 |
---|---|
토마스 아퀴나스 존재유비의 행위론 (38) | 2023.01.06 |
Aquinas Thomas, primary data / secondary data (foreign book, foreign academic research papers, domestic book, Domestic academic research papers) (4) | 2022.10.08 |
Works by Thomas Aquinas: 약 어 표(Abbreviations) (10) | 2022.09.23 |
토마스 아퀴나스의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 (2) | 2022.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