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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이육사 시인을 무척 좋아했다.
그의 시와 삶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가 삶이고 삶이 시였다.
그래서 인지 졸업 소 논문도 이육사 시
세계에 대해 썼던 기억이 난다.
이육사가 17번의 투옥에도 항일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시가 삶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40살에 목숨을 잃었다.
이육사 시인 못지 않게 좋아했던 신학자가
바로 본회퍼이다. 본회퍼도 나치에 저항하고
히틀러 암살을 계획하고 39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역시 신학이 삶이었고 삶이 신학이었다.
그런데 요즘 현란한 언어 유희만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 삶과 무관하게 말이다. 삶이 없는 언어 유희는
공연불에 불과하다.
광화문에서, 아니 거리에서 외치는 거짓 선지자를 보라.
본회퍼의 행위를 자기 행동과 동일시하고
정당화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니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신학자 본회퍼와 시인 이육사 삶.....
아무쪼록 말과 삶이 일치하는 인생이 멋진 삶이다. 2020/01/11 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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