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三聖宮) : 마고성, 삼성궁(三聖宮), 한풀선사, 원방각 문화(圓方角文化)(오징어 게임, 천부경(天符經), 한글 창제 원리)
지리산 산청 펜션에서 가족 모임을 마치고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三聖宮)으로 향했다. 삼성궁은 수십 년 전에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혼자 남부 능선과 삼신봉(三神峰)을 걸쳐 쌍계사 쪽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아서인지 낯설지는 않았다. 오늘의 인문학 여행 목적지는 지리산 삼성궁이다. 삼성궁은 지리산 삼신봉 기슭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청학동 도인촌이 있는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 해발 850m에 있다. 정식 명칭은 지리산 청학선원 삼성궁이다. 지리산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 출신 강민주(한풀 선사)가 1983년부터 10만 평(33만㎡)의 터에 고조선 시대의 소도(蘇塗)를 복원하였다. 궁의 이름은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궁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삼성궁이다. 처음에는 삼신봉 아래에 있어서 삼신궁인줄 알았지만 가보니 삼성궁이었다. 실제로 삼성궁(三聖宮)에 있는 마고성 안에 삼신궁(三神宮)이 있다. 삼성궁은 지리산 청학동 바로 옆에 있다. 원래 청학(靑鶴)은 태평 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나고 우는 새 이름이다. 푸른(靑) 학(鶴) 말이다. 청학동이라는 의미도 태평성대의 이상향을 나타내고 청학이 사는 마을이 바로 청학동이다. 삼성궁의 학소대 바위에도 ‘선국의 창시자인 선암 선인이 청학을 불러 노닐었다’라고 적혀 있다. 이곳은 산속 깊숙이 들어가는 지리산 골짜기로 은둔의 장소이다. 경치도 아름다워 선경(仙境)이라 불린다. 문명의 찌든 때가 전혀 없는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말이다.
원래 청학동 사람들은 강대성(姜大成, 1898-1954)이 창시한 유불선 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라는 신흥종교를 믿고 있었다. 일종에 유교, 불교, 도교를 혼합한 종교인듯하다. 갱정유도는 단군계 신흥종교로 일심교라고 부른다. 필자가 보기엔 강대성 교주의 행적과 교리를 보아서 증산도 교리와 유사하다. 아마 증산도 교리에 뿌리를 두는 듯하다. 갱정유도의 정식 명칭은 ‘시운기화 유불선 동서학 합일대도 대명다경 대길유도 갱정교화일심(時運氣和儒佛仙東西學合一大道大明多慶大吉儒道更定敎化一心)’이다. 종교 명칭이 길어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남원에 본부가 있고 지리산 청학동에는 수련소가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그들은 집단생활을 하고 한복에 푸른 조끼를 입고 남자나 여자나 모두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게다가 선비들처럼 어른이 되면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도포를 입는다. 자녀들은 정식 학교에 가지 않고 마을 서당에 다닌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삼성궁으로 들어가 보자. 삼성궁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삼성궁을 지키는 여러 솟대와 박물관 지붕에 있는 거대한 푸른 학이다.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맞이한다. 그리고 솟대에는 하얀 새들이 기둥 위에 앉아 있다.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선국(仙國)’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신선의 나라’라는 뜻이다. 삼성궁은 크게 마고성과 삼성궁으로 구획되어 있다. 제일 먼저 들어가면 마고성이다.
인류의 시조를 모신 마고 신궁 마고성: 검단길, 마고할매
마고성에 들어서면 마치 원시시대 생활로 들어서는 것 같다. 그래서 마고성을 인간의 본향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름 역시도 ‘인간의 본향을 회복해 인간 본성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취지이다. 마고성에 가는 길은 ‘검달길’이라고 하고 마고성에서 삼성궁으로 가는 길을 “배달길”이라고 한다. 검단길에서 ‘검’은 ‘신성하다’, ‘달’은 ‘땅’을 의미한다. 결국 신성한 땅이나 신령스러운 길이라는 뜻이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마치 신비에 싸인 분위기가 필자 주변을 감싸는듯하다. 돌담 사이에는 강철로 만든 사슴 무사 조각상이 한 손에 칼을 든 채 서 있다. 아마 마고성을 지키는 수호신인 듯하다. 주변에는 흰 천 조각 밧줄이 걸려있어서 신성한 곳인지 누구나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학소대와 정자가 이어진다. 바위에는 ‘선국의 창시자인 선암 선인이 청학을 불러 노닐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검달길을 걷다 보면 기괴한 용, 뱀, 말, 양 그림과 부적처럼 생긴 여러 문양이 가득하다. 들어서는 문(門) 옆에 어김없이 새겨져 있다. 문과 문 사이를 ‘마당’이라 부르는 데 마당들을 둘러보는 여정을 인간 본성의 시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제일 먼저 묘신지문(卯神之門: 토끼신의 문)이라고 적힌 큰 바위가 나온다. 토끼 신의 문(門)이다. 더 올라가면 사신지문(巳神之門: 뱀신의 문)이 등장한다. 뱀 신의 문이어서 뱀의 몸처럼 구불구불한 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 뒤 오신지문(午神之門: 말신의 문)이 이어진다. 역시 터널이다. 터널 천장에는 기괴한 문양과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마치 고대시대의 암벽화 터널을 지나는듯하다. 마지막으로 양의 신인 미신지문(未神之門: 양신의 문)을 지나서 검단길의 산 중턱에 올라가면 한반도와 만주를 상징하는 연못이 있다.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청록색 연못이다. 그 연못은 높은 돌벽으로 마치 성처럼 둘러싸여 있다. 연못 위쪽에는 단전호흡을 하는 원뿔 모양 움집이 보이고 기와 건물도 있다. 또한, 성벽 너머 산 쪽에 있는 봉분이 마고의 무덤이라고 한다. 여기가 바로 마고성이다. 현재는 인간의 자연성 회복, 인류화합과 평화, 생명존중 사상을 교육하는 민족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고성 바로 옆에는 작은 삼신궁이 있다. 삼신궁은 산신, 용왕, 칠성을 모시는 신당이다.
마고성이라는 말은 신라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에 나오는 상상 속의 지역이다. 소위 ‘마고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신 ‘마고’를 모시는 곳이다. 마고는 마고할미, 마고 할머니, 마고 선녀, 마고 할망, 성모천왕 등으로 불리는 창조의 여신이고 거인 신이다. 전승에 따르면 마고할미는 하늘도 땅도 없는 세상에서 잠을 자면서 코를 골다가 하늘을 내려앉게 해서 카오스 상태를 만들고, 깨어나면서 하늘을 밀어서 갈라지게 만들어 해와 달이 생기게 하고, 땅을 긁어서 산과 강을 만들고, 큰 홍수를 막고, 마지막으로 무당에게 자신의 힘을 내려주고 자신은 승천했다고 한다. 여기서 마고 할매는 엄밀히 말하면 본명은 마고이며 할미는 존칭에 해당한다. 할미로 불리고 있지만 사실 무속 등에서는 젊은 미녀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신화에서 ~할매 혹은 ~할배는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존댓말에 가깝다. 할배 혹은 할매를 풀이하자면 한+아비, 한+어미, 즉 大父, 大母이다. 지금 역시도 한반도 각 지방의 마고 관련 전설이 존재한다. 마고를 모시는 사당 역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고할미가 거한 산은 지리산, 천태산 등이다. 지리산은 고대로부터 산신 신앙의 중심지이다. 신라 시대에는 산신에게 제사 지내던 삼산오악(三山五嶽) 중 오악(五嶽)의 하나였다. 노고단(老姑壇)이란 명칭도 지리산 산신에 대한 성대한 제사 의식과 관련이 있다. 실제로 노고단에서 제사 의식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신당(神堂)의 일종인 노고 당의 할미도 마고할미일 가능성이 있다. 지리산에 관련된 성모상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옥황상제가 딸 마고에게 지리산을 수호하라고 명하셨다. 이때 땅을 지키는 신이 신라왕의 꿈에 나타나 경주 옥돌로 석상을 조각하여 천왕봉에 사당을 지어 봉안하고, 항적사를 지어 향화를 받들게 하였다. 이때 성모상 앞에는 쇠로 만든 말 두 마리와 청 삽살개 두 마리를 두어 지리산 일대의 신장, 잡귀, 맹수 등을 제압하였다.
현재도 지리산 성모는 ‘산신 할머니’, ‘천왕 할매’ 등으로 불리며 마을이나 개인의 대소사가 있을 때 치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신으로 숭배되며 여러 유형의 전승을 만들어 왔다. 이러한 전승들 속에서 지리산 성모는 ‘마고’라는 거인 창조신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라며 고려 건국신화에 차용되었던 흔적도 발견된다. 또한, 법우 화상과 혼인하여 팔도 무당이 되게 하였다는 전승도 있다. 이 전승은 무속과 불교의 습합으로 민간신앙의 층위(層位)를 보여 준다.
마고 할매에 대한 신화도 있다.
지리산 천왕봉에는 마고라고 하는 성모천왕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성모천왕이 산을 내려다보는데 ‘법우’라는 도행(道行)이 높은 화상이 도를 닦고 있었다. 성모천왕은 ‘내가 저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어 하늘의 뜻을 펼치리라.’ 하고 마음을 먹고 산꼭대기에서 소변을 보았다. 법우 화상이 홀연히 보니 산골짜기에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물이 불어 큰 시냇물이 흘러 내려오는 것이었다. ‘어디서 이렇게 큰 물줄기가 생겼을까?’ 궁금해하며 천왕봉 꼭대기로 올라간 법우 화상은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인을 발견하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성모천왕은 “내가 인간 세계에 귀양을 내려와 있었는데, 그대와 인연을 맺고자 물의 술법을 이용하였다.”라고 하였다. 둘은 드디어 부부가 되어 딸 여덟을 낳았고, 이들에게 무업(巫業)을 가르쳐서 조선 팔도에 보냈다. 지금 팔도의 무당들은 이들의 후손이다. <한국민속문학사전: 설화 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민족 성전 삼성궁: 배달길, 건국전
우리는 마고성(麻姑城)의 검단길을 지나 이제 ‘배달길’으로 들어섰다. 삼성궁 일대의 길을 배달길이라고 부른다. ‘배’는 ‘밝다’, ‘달’‘은 ‘땅’을 의미하니 ‘밝은 땅’이라는 의미이다. 삼성궁은 고조선 시대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인 소도(蘇塗)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왜 하필 소도를 본떴을까? 필자의 의문이었다. 원래 소도(蘇塗)는 죄인이 도망하여 오더라도 잡아갈 수 없을 만큼 신성하고 특별한 공간을 말한다. 삼한 시대에 천신께 제사 지내던 성지(聖地)인 소도(蘇塗)엔 보통 사람들의 접근을 금하려 높은 나무에 기러기 조각을 얹은 솟대로 표시를 했다. 소도에 영고(鈴鼓)를 단 큰 나무를 세우고 제사 지내던 당시의 주술적인 민속신앙이 바로 오늘날의 솟대이다. 《후한서》 《삼국지》 등에 소도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한풀 선사는 지리산 자락의 돌로 솟대를 쌓아 옛 소도를 복원하고 솟대를 쌓아 홍익인간 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만큼 삼성궁은 특별한 구역이다. 삼성궁은 ‘삼성’인 한배임(환인), 한배웅(환웅), 한배검(단군) 등의 비롯하여 역대 왕조의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 무장을 모시고 있다. 삼성궁에 있는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삼성궁은 우리 민족 고유의 예(禮)와 도(道)를 청하여 왔으면,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하고자 연마하는 배달의 성전이다.” 또한, “선도의 조종이며 배달민족의 국조인 환인, 환웅, 단군의 삼성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었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일부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여러 돌탑을 쌓았다.
그렇다. 삼성궁을 만든 이유는 한풀 선사가 언급했듯이 아마 건국이념을 세우고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데 있을 것이다. 한풀선사는 “삼성궁은 한국인으로 마땅히 조성해야 할 국조전”이라고 강조한다. 지금도 매년 10월이며 국조 단군왕검의 고조선 개국 날을 기념하기 위해 개천 대제를 지낸다. 그는 매년 개천 대제를 올릴 때 “5916년 전 환웅 천황이 배달국을 세우시고 신시를 열었다.”라고 염송 할 정도로 민족 성전에 애착을 두고 있었다. 고려의 승려이며 학자인 일연(一然)도 <삼국유사> 첫머리에서 환웅의 개천 사실을 이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서자 환웅이 천하에 인간 세상을 건지려고 하는 큰 뜻을 품었다. 아버지 환인께서 아들 환웅의 뜻을 알았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 내려와서 신시(神市)를 열었다. 이분이 바로 환웅천왕이시다." (삼국유사)
삼성궁(三聖宮) 안으로 들어가면 10만여 평에 달하는 매우 넓은 대지 위에 소도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쌓고 있는 1,500개의 솟대 돌탑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색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이 돌탑들은 이곳에서 원력 솟대라 부른다. 앞에 펼쳐진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무수한 돌탑들은 완벽히 이상적인 인간인 선인들을 배출하고 싶은 소망을 담았다고 한다. 원래 이곳은 민족 선도 교육의 총본산이며 천신께 제사를 지내는 소도이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는 개방되었다. 앞으로 몇 걸음 더 가면 한반도와 만주 벌판을 닮은 연못, 단전호흡하는 움집이 나타나고 원력 솟대라 불리는 돌탑들과 한낮에도 햇빛 한점 들지 않는 토굴, 전시관, 전통 찻집 아사달, 천궁, 숙소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리고 곳곳마다 맷돌·절구통·다듬잇돌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진 길과 담장으로 조화롭게 어울려져 마치 고풍스러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곳에서 한풀 선사가 여러 수행자와 함께 선도(仙道)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한다. 이곳이 그들에게 일종의 도장(道場)인 셈이다. 수행자들은 새벽에 일어나 삼일신고의 가르침에 따라 삼법 수행을 하고 해맞이 경배를 드린 뒤 선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활쏘기·검술 등 전통 무예와 선무 수련 등을 익힌다. 오후에는 솟대를 세우거나 밭을 일구면 노동을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법문을 공부한다. 그 외에도 전통 무예, 춤사위를 배우는 선무, 오직 삼성궁에서만 있는 아리랑 가락에 맞추어서 하는 아리랑 검법 등을 익힌다. 필자가 보기에도 그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신과 혼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기운 듯하다. 그 중심에 이를 위해 평생을 몸 바친 한풀 선사가 있다.
위쪽으로 ‘다물’이라는 건물 이름이 보인다. 안을 들여다보니 황금색으로 빛나는 단군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삼성궁 맨 꼭대기에는 ‘건국전(建國殿)’이 있다. 여기는 환인, 환웅, 단군 즉, 삼성(三聖)을 모신 곳이다. 건국전에 오르는 길목에도 역시 수많은 돌탑, 가지각색의 솟대, 특이한 토기와 토우 등과 조각, 옹기, 기와 등 각종 장식품이 고유한 자신만의 색채를 띠고 자리를 잡고 있다. 드디어 건국전 앞에 다다르니 '홍익세상 이화세계'라 쓰인 현판이 보인다. 홍익인간이란 말은 원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 말의 뜻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뜻이다.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는 우리나라 건국이념이다. 환웅이 땅으로 내려올 때 환인이 준 천부인에는 홍익인간 정신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고개를 돌려 삼성당을 만든 한풀 선사가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지리산의 도인 한풀 선사
지리산 깊은 산속에 거대한 돌 지붕 삼성궁을 만든 한풀 선사는 과연 누구인가? 궁금하다. 본명은 강민주이다. 거대한 삼성궁을 혼자 힘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삼성궁 터를 매입하기 위해 자금이 없어서 사비를 털기도 했다. 다행히 큰 누님(강태숙)에게 돈을 빌려 청학동 일대 화전민이 머물던 땅을 매입했다고 한다. 물론 뜻있는 그 지역 유지들의 기부로 땅을 받기도 했다. 필자가 한풀 선사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신문 기사나 온라인상에 나온 사진을 보면 긴 수염과 긴 머리를 하고 있어 마치 도인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를 지리산 도인으로 부르고 싶다. 그는 청학동에서 면면히 이어온 신선도(神仙道) 교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신선도의 한 종파인 동도교 창시자인 할아버지 강한수 옹(작고)과 아버지 동원 선사(강동혁·작고), 그리고 그는 이미 6세 때부터 부친(의사)의 친구였던 스승인 낙천 선사(김종운·작고) 밑에서 삼륜, 오계, 팔조, 구서의 계율과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등 신선도의 경전, 즉 선도를 배웠다. 그에게 낙천 선사는 유년시절 정신적 지주였다고 한다. 낙천선사는 한풀 선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풀아, 너는 앞으로 민족혼이 샘솟는 우물을 파거라, 그러면 누군가 일부러 갖다 넣지 않아도 거기에는 작은 피라미가 생길 것이고, 미꾸라지나 붕어가 생기고, 못된 가물치나 메기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목마른 자들이 샘을 찾듯 뿌리를 잃은 수많은 자가 쉬어서 목을 축이게 하라.
이처럼 그는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단군신화(神話)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민족정신 부흥 운동을 펼쳤다. 그는 “일본은 시조신을 모신 ‘이세신궁(伊勢神宮)’이 있고, 중국도 시조 ‘황제 헌원(皇帝軒轅)’을 모신 관묘가 있고, 북한은 단군릉과 단군 관련 유적 30여 종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국조를 모시는 사당이 한 곳도 없다”라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공공사업을 개인이 하고 있는데도 정부와 지자체에서 미안한 기색 없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라고 질타했다. 선사는 "시조(始祖)를 개인영업에 이용하면 중국은 사형, 일본은 종신형에 처한다"라고 했다. 나라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지만 대종교·신선도·동학·천도교 등 민족 종단의 실체가 사라지고 있고, 민족혼과 독립정신이 사라지는 현실도 안타깝다는 게 한풀 선사의 하소연이다.
그는 검정고시로 중앙대에 입학해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이어 석사학위까지 받은 재원이다. 그런데도 그는 온 청춘을 지리산 깊고 깊은 숲 속 골짜기에 바쳤다. 한풀 선사는 어느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삼성궁을 건립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저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이 같은 배달 민족성 전을 건립했습니다. 손으로 돌 하나하나 가지고 와 쌓았습니다. 특히 한반도와 만주를 닮은 연못에는 제가 백두산 천지에서 가져온 물을 연못에 합수했습니다. 제가 고조선의 소도를 복원하는 까닭은 우리의 배달 선도 문화를 계승하고자 함입니다
한 마디로 그는 죽기 살기로 삼성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고로 삼성궁은 혼자 힘으로 돌 하나하나를 쌓아 올리고 올린 도량이다. 돌 무게만큼이나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이제 매일 하루 20t의 돌을 옮겨서 세운 솟대는 삼성궁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이곳의 맷돌은 1만 2천여 개나 되고, 골동품도 1만여 점 정도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천부경과 함께 우리 민족종교 대종교의 경전 중 하나인 삼일신고의 정신에 따라 3천3백33개의 솟대를 세우고 있고 현재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우리의 맷돌을 수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풀 선사는 “솟대는 환웅이 나라를 다스릴 때 제천을 지내던 소도를 의미하며, 음양의 이치로 만들어진 맷돌은 우리 민족의 민족정기를 대변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한풀 선사는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래 신(神)들은 인간들의 필요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흔히 전통 신관을 부정하였다. 고대의 신들은 인간을 굴복시키며 신성을 드러내고, 중세는 신성이 인성을 노예로 삼아 억압했고, 근대에는 신과 인간 사이에 숙주(宿主)가 나타나 인간을 통제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에는 숙주(宿主)들 간의 반목과 갈등으로 인간사를 전쟁과 분열로 몰아넣게 되었다는 논리를 펼치면서 대립과 갈등을 넘어 조화와 균형으로 인간 본성인 자연성을 회복하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실현하기 위해 삼성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한풀 선사의 신관(神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필자는 이러한 신관 형성의 원류가 원방각 문화(圓方角 文化)라고 본다. 다음은 삼성궁을 짓는 토대가 되는 원방각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원방각 문화(圓方角文化) : 오징어 게임, 천부경(天符經), 한글 창제 원리
원방각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하자면, 7천 년 전 환웅 시대 신지(벼슬 명칭)“혁덕”이 사슴 발자국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환웅천왕이 신지에게 “서계”에 사물 표시 부호를 만들라고 하여 만든 것이 “녹도문”이며 이것이 태고 문자다. 중국에서 글자의 시조라고 추앙받는 창힐이라는 인물이 신지혁덕의 제자라 한다. 한자의 뿌리는 녹도 문이며 한글의 모태가 된다. 녹도문은 가림토 이전의 상고시대 문자다. 천부경 81자가 녹도 문으로 쓰여 있다 한다. 단군시대 을보록이라는 자가 가림토 문자를 만들었다. 한글의 원형이다. 지리산 삼성당은 천부경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천부경은 하늘과 땅과 인간의 본성과 변화 이치를 담은 인류 최초의 경전이다. 실제로 그 흔적들이 삼성당 돌무더기 사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원방각 말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자에 새겨진 상징이 원방각(圓方角, ○□△)이다. 원방각은 우리나라 70~80대 전통 놀이의 오징어 놀이의 놀이판 도형도 마찬가지로 원방각(圓方角, ○□△)이다. 놀이의 규칙은 원방각의 도형 속에서 방(方)을 통과 후 각(角)에 들어간 후 원(圓) 속에 있는 삼각형에 도착하면 승리한다. 이 법칙은 천부경 체계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즘 뜨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오징어 게임 드라마에서 모든 개인의 선택의 책임이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잘못 선택하면 죽음에 직면한다. 그 이유는 원방각에 있는 천지인 사상 즉,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동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과 인간의 종속적 관계에 있는 서구사회에는 신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모든 책임에서 더 자유롭다. 그 이유는 서구사회에서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의 책임은 자유롭다. 오징어 게임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대목이다.
황동혁 감독이 만든 오징어 게임은 2022년 9월 12일 제74회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최초로 연출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받으면서 본상에서 2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내용은 이렇다. 456명의 사람이 456억의 상금이 걸린 미스터리한 데스게임에 초대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돈과 출세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치열한 서바이벌 생존게임에 벌인다. 한마디로 적자생존의 현장이다. 그리고 그들은 게임의 중독자들이다. 게임에 목숨을 건다. 게임에서 승리하면 456억 원을 가질 수 있지만 탈락하면 죽는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추악한 자본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불평등 속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경쟁 말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사용한 원방각(圓方角, ○□△) 원조는 천부경(天符經)이다. 천부경에는 우리나라의 전통사상인 원방각(천지인) 사상이 있다. 바로 천지인 사상이다. 일종에 최초의 고대 우주 사상이고 우주철학이다. 천지인이 원방각으로 형상화되었고 원방각인 동그라미, 세모, 네모는 만물의 존재 원리를 뜻한다. ○동그라미는 하늘, □네모는 땅, △세모는 사람인 천지인 사상을 담고 있다. 하늘은 지 / 지식, 지혜 땅은 덕 / 마음, 인지 사람은 체 /체력, 생명이라고 볼 수 있다.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5자로 시작하고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5자로 끝난다. 총 81자로 구성되었다. 9*9=81자로 9 변과 9 복을 상징한다. 81자 안에는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다. 유(儒)·불(佛)·선(仙)의 뿌리이고 유(儒)·불(佛)·선(仙)을 아우르는 철학 말이다.
一始無始 析三極無盡本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
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運三四成環五七
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중요한 철학과 사상이 존재한다. 바로 1·2·3 라는 인식 체계이다. 대우주에서 세 가지, 즉 삼극(三極)인 하늘과 땅과 인간을 一, 二, 三으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 <천부경>의 一과 二와 三과 천지인(天地人) 삼재와 원방각(圓方角, ○□△)의 도형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동양의 고대시대에는 거대한 합의 하나를 우주라고 본다. 마치 오랫동안 서구 사상을 지배해온 일자(一者, the one)처럼 말이다. 하지만, 천부경의 ‘하나의 합’과 일자(一者)는 분명 다르다. 서구 철학의 일자(一者)가 절대 완전자(絕對完全者)인 반면에 천부경에서 ‘하나의 합’은 공(空) 또는 무(無)이다. 물론 공(空)과 기(氣)가 존재하는 비어 있음이다. 있음이 없음이고 없음이 있음 말이다. 필자는 이것을 무규정적인(apeiron) ‘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음과 양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단순히 둘로 나누어지는 음과 양이 아니다. 우리나라 태극기를 보면 알 수 있다. 태극기 원은 진홍빛과 푸른빛이 단순히 직선으로 명확하게 둘로 나누어지는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음과 양이 만나는 경계에 부드러운 S 자 곡선으로 서로 맞물려 있다. 양이 생기는 시점에 음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음이 생기는 시점에 양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음과 양이 아주 조화로운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음과 양에서 생성과 소멸이 공존한다. 그다음 대립의 음양을 거쳐 생명의 원리인 천·지·인의 세상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먼저 하나의 우주가 있고, 세상을 상반된 성격으로 나누는 음양의 원리가 생기고, 다시 극단의 대립을 피해서 조화된 세계로 천·지·인이 만들어지는 원리 체계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전통 우주관이다. 우리가 동의하든 아니하든 또한, 이런 원방각은 한글 창제 원리로 그대로 적용된다. ㅇ에서ㆁㆆㅎ, ㅁ에서 ㄱㄴㄷㅂㄹㅍㅌㅋ, ㅿ에서 ㅅㅈㅊ이 만들어졌다. 천지인(天地人)은 훈민정음의 기본 모음 · _ |으로 표시된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언급할 수 없지만, 아무튼 천지인 사상이 한글 창제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직접 삼성궁으로 들어가서 원방각과 천·지·인 사상의 흔적을 더듬어 보자. 실제로 삼성궁은 천지인 사상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상고사 제천의식 및 삼한 시대 각종 묘역에 벽화용 문양으로 많이 차용된 원방각을 석각 해 놓은 솟대 같은 바위 등이 곳곳에 보인다. 한풀 선사가 직접 천지인을 의미하는 원형, 사각형, 삼각형 형상의 원방각(圓方角)을 석각 해서 놓았다. 그리고 호박돌(cobble stone)에 고대 인물상을 조각해 돌담 사이나 옆에 다소곳이 두었다. 돌에 새긴 글자도 신중하게 선택하여 결정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한민족 고대 경전 천부경 81자에 근거했다. 실제로 삼성궁도 모두 81개 구역으로 나누고 예술 장르도 81자로 구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지리산 청학 선원 삼성궁을 둘러보았다. 삼성궁을 통해 마고성, 삼성궁, 지리산의 도인 한풀 선사, 원방각 문화와 천·지·인 사상의 흔적을 더듬었다. 필자에게 지금까지 어렴풋이 알았던 고대 종교나 역사 등을 선명하게 알 기회였다.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한 일,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 민족성 전을 건립한 일, 민족의 정통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한 일 등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민족을 사랑하는 열정과 인내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풀 선사는 그 중심에 있는 분이다. 그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문화를 되찾아 홍익인간 세계를 이루고 무예와 가, 무, 악의 수련을 통해 지친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때를 벗기고 생명의 부활을 꿈꾸었을 것이다. 삼성궁은 한민족 뿌리의 정체성을 보존하려는 한풀 선사의 철학과 예지가 담겨있다. 2022/11/15 뜨르 / 혜윰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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