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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다시 읽기(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by 뜨르k 2017.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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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다시 읽기(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체 게바라 평전은 15년 전에 구입하여 읽었던 책이다. 오랜 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지금 다시 꺼내서 보는 것은 6월 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금 한국의 민주화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서 나라다운 나라가 무엇인지 성찰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뇌리를 스치는 언어는 ‘최고의 혁명가’, ‘정의와 희망의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생애에 모두 것을 던진 분’ 이다. 이 책은 체 게바라 전문가로 알려진 장 코르미에가 체 게바라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책인 만큼 생생한 살아있는 평전이다. 체 게바라의 삶과 사상이 고스란히 생생하게 녹아 있어서 마치 체 게바라를 직접 만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프랑스 일간지 기자인 저자가 게바라의 부모 등 관계했던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잡문과 편지 등을 모아 체 게바라의의 삶과 생애를 생생하게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편의 장엄한 대서사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체 게바라는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한 중류 가정에서 태어난다. 의학을 공부한 엘리트였지만 우연히 두 번의 오토바이 남미여행을 통해서 사회모순을 읽고 그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는 6개월간의 여행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고 침략 받은 라틴 아메리카의 아픔을 느끼고 온 체 게바라는 의사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가난한 민중의 삶을 바라본 그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는 벌써 28세 때 어머니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저는 예수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는 힘닿는 한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싸울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십자가에 매달아 두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체 게바라를 인간 예수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아마 체 게바라는 예수의 고뇌를 알았을 것이다. 예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했지만 체 게바라도 불의를 타파하기 위해 총을 든 예수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모순의 세계를 먼저 치료하는 것이 옳다는 마음으로 의료기구 대신에 총을 들고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 혁명에 뛰어들은 체 게바라는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되었다. 검은 베레모에 제멋대로 엉클어진 기른 긴 머리카락,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은 혁명가 그 자체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사망한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그의 혁명정신은 세계의 젊은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체 게바라를 주제로 포스터 그리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젊은 들을 사로잡았다. 이것은 체 게바라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려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도 '우리 세기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평가할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자기 존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누군가의 부정이 행해지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체 게바라-  

체 게바라는 1956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중심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인 결과 쿠바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후에도 몸소 노동의 본을 보여주었다. 그 뒤 게바라는 쿠바 정부에서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 등을 역임했지만 내전 중이던 아프리카 콩고로 가 콩고혁명을 위해 노력했고, 다시 일 년 후에 남미혁명에 불을 놓기 위해 볼리비아로 숨어들었다. 그는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정치가로 남지 않고 평생을 혁명가로 떠돌다 가 39세에 볼리비아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아래는 체 게바라의 말이다.

“물레방아를 향해 질주하는 돈키호테처럼 나는 녹슬지 않는 창을 가슴에 지닌 채, 자유를 얻는 그날까지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갈 것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불투명한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저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책을 버리고 총을, 편안한 삶을 버리고 혁명의 유랑을 택했다. 제국주의의 착취를 옹호하는 사람들에 맞서 싸우다가 죽기로 결심했다.”
“너희들이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은 나는 더 이상 너희들과 함께 있지 못할 게다.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빠는 소신껏 행동했으면 내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단다. 아빠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들로 자라기를 바란다.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구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해 주기 바란다.”  -체 게바라가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체 게바라는 인간에 사랑이 없이는 진정한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것과 인간에 대한 감성적 사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몸소 보여준 분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혁명가가 체 게바라이다. 6월 민주항쟁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1987년 6월 항쟁 30주년이다. 그 날의 함성이 지금도 메아리친다. ‘호헌철폐’ !! ‘독재 타도’, 80년도 세대의 핵심 키워드는 학생운동이다. 대학에 입학해 운동을 경험한 세대이다. 이런 운동의 동력은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경험과 폭압적인 정권, 그리고 혁명에 대한 꿈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아무런 정보가 없다가 대학에 들어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알았다.

전두환 정권이 살인으로 세워진 정당성 없는 정권이라는 걸 깨닫게 된 이후부터 1987년 6월 민주 항쟁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80년도 세대는 운동을 통한 정치에 모든 것을 걸었던 세대였다. 학생운동에 참여 안하고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 동료를 기회주위자로 여길 정도였다. 그 만큼 학생운동은 대세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러한 민주화 운동과 학생운동은 인간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체 게바라가 인간의 사랑으로 혁명을 완수한 것처럼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체 게바라처럼 말이다. 냉철한 가슴과 감성적 사랑이 조화될 때 진정한 혁명가가 될 수 있음을 새기면서....

 

1987년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여..... 2017/6/10 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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