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인문학여행 이야기 2 - 맛과 멋, 지진의 고베 그리고 아리마온천 -
-고베(神戶, Kobe): 산노미야(三宮), 베이에어리어, 아리마온천(有馬溫泉)
일본의 인문학 여행 이야기의 두 번째는 오사카에서 가까운 고베이다. 고베는 일명 고베 대지진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베를 탐방하기 전에 고베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있었다. 자연 재해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이후 고베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도 관찰하고 싶었다. 이것은 단지 대상화된 사물을 관찰하기 위해가 아니라 누구나에게 닥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위협을 성찰하기위해서이다. 그것이 일본이기 때문에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고베(神戶, Kobe)지진은 1995년 1월 17일에 발생한 일명 ‘한신․ 이와지 대지진’(阪神·淡路大地震)이라고 일컫는다. 이 지진으로 약 6,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4만 명 이상의 부상자와 2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경제적으로는 당시 피해는 약 150조에 달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자연재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이상이 지난 현재 고베는 어떤 모습일가? 필자가 방문할 때 고베는 지진의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완전히 회복된 상태를 넘어서 최신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런 모습에 필자는 참으로 놀랐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나약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인간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지만 끝까지 생존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불안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진 등 자연재해와 질병, 죽음등이 그 사실을 보여 준 것이다.
뒤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교각이 기울어져 지진피해의 상징이 된 한신고속도로(오사카-고베)는 1년 8개월 만에 복구되었고 지진으로 인하여 점포와 주택의 대부분이 소실됐었던 고베시 나가다구 상점가와 주변지역은 재개발로 고층 빌딩이 줄줄이 들어섰고 당시 지진 피해의 대표적인 기업이었던 고베 제철소역시 1천억 엔의 피해를 입었지만 이제는 철강수요 회복 등으로 연 1천억 엔의 수익을 내는 기업이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복구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지진피해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공원이 고베 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도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무너진 부두 일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지진에 대한 기억의 노력이 엿보였다. 메모리얼 파크전시장에는 지진 당시의 피해 상황과 복구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그때 당시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지진 당시 썰물처럼 줄어들었던 고베시의 인구도 1백 50만 명이 되어서 지진 전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일본 정부 관계자는 “당시 지진을 토대로 건물들의 내진설계는 한층 강화됐고, 구조체제 등 사회 안전망도 훨씬 촘촘해졌다”고 강조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인정하기 싫지만 자연재해에 대한 일본인의 자세를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지진 등 자연재해는 일본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지금부터는 현재의 고베를의 모습을 탐방하도록 보자.
현재 고베(神戸)는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로 발전했고 효고 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과거에도 중국으로부터 문물이 들어올 때 교토나 오사카로 들어가기 전 반드시 고베를 거쳐야만 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고베는 국제무역항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일본의 제2의 무역항이다. 일찍부터 외국에 대한 문호 개방으로 유럽풍의 세련된 건물들이 많이 있어 마치 작은 유럽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처음 고베에 외국인 거주지가 형성될 때 약 1,000채에 달하는 이진칸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30 여채 이진칸만 남아 있어서 조금 아쉽지만 여전히 국제도시의 모습은 간직하고 있으며 유럽풍의 이미지를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고베를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고베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름다움과 즐길 수 있는 먹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맛과 멋을 즐길 수 좋은 대표적인 상점가로는 모토마치로 꼽을 수 있다. 모토마치에 대해서는 뒤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맛으로는 일본 3대 와규 중 하나인 고베소(고베큐)가 유명하다. 고베소는 우리로 말하면 횡성 한우 같은 브랜드를 말한다. 여기에서 와규(和牛)이라는 말은 일본 소 품종을 일컫는 말인데 특히 일본에서는 털이 검은 와규가 많이 사육된다고 한다. 이 품종은 포화 지방보다 불포화 지방이 풍부하면서도 마블링이 우수한 고급 소이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맛도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고베에만 있는 고베 스위츠 등도 맛볼 수 있고 그외 다양한 먹거리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베을 일컬어 먹거리 천국이라는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필자도 좋은 먹거리가 있음에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떠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고베는 오사카 중심부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다녀와도 되는 지역이다. 교통편도 다양하다 가장 저렴한 교통편을 이용해도 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스를 사용해도 된다. 오사카에서 고베로 이동하는 방법은 3가지다. 첫 번째는 JR 오사카(大阪) 역에서 JR센을 이용하여 JR 산노미야(三宮) 역이나 JR 고베(神戶) 역으로 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큐 우메다(阪急梅田) 역에서 한큐 고베(阪急神戶)선을 이용하여 한큐산노미야(阪急梅田) 역으로 가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한신 우메다(阪神梅田) 역에서 한신 고베혼(阪神神戶本)선을 타고 한신 산노미야 역으로 가는 방법이다. 어느 방법을 이용하든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으므로 이동에는 큰 불편함이 없다. 필자는 간사이 쓰루패스 를사용하여 한큐 전철로 고베를 다녀왔다. 한규 전철은 오사카 키타지역에 있는 한큐 우메다에서 출발하면 된다
고베는 흔히 크게 산노미야(三宮), 베이에어리어, 아리마온센(有馬溫泉) 그리고 히메지로 구분된다. 필자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산노미야(三宮), 베이 에어리어, 아리마온센(有馬溫泉) 지역만 탐방하였다.
산노미야(三宮)
산노미야(三宮)는 고베의 중심지이고 최고의 번화가이다. 그리고 산노미야 역은 6개의 노선이 지나가는 교통의 중심지라 고베의 어느 곳으로 여행하든지 반드시 이곳을 거쳐 가거나 이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형 백화점등 수많은 상업시설이 역 주변에 몰려있고 또한 지하 쇼핑몰도 아주 발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원래 고베라는 지명은 한자로 '신사에 소속된 집' 또는 ‘신(神)을 지키는 집’이라는 의미로 신사와 연관되어 있다. 일본 지명이나 상호의 한자를 보면 한신(阪神), 고베(神戶)와 같이 신(神)이라는 글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의아했다. 산노미야의 한자도 삼궁(三宮)인데 일본에서는 신사를 신궁(神宮)이라고 부르기도 하기 때문에 필자는 신궁(神宮)과 삼궁(三宮)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궁금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화랑세기』의 시대에 신라의 성골들이 살던 신성한 장소를 삼궁이라고 불렀는데 대궁은 경주시 인왕동 소재 월성 내, 양궁은 남산서북쪽이고 사량궁은 월성 북쪽이라고 알려져 있다. 분명 삼궁 산노미야도 종교와 관련되어 있는 지역이 아닌지 추정할 수 있다. 인도 만큼은 아닐지라도 신들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이런 맥락에서 먼저 고베 산노미야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이쿠다 신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쿠다 신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 신사이다. 약 201년에 세워졌고 고베(神戶)라는 이름도 이쿠다 신사 ‘신(神)을 지키는 집’의 간베(神戶)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처럼 고베와는 아주 밀접하게 관련 있는 신사이다. 이쿠다 신사는 도심과 달리 연못과 숲이 있어서 고즈넉한 분위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모시는 신은 와카히루메노미코토(わかひるめのみこと?·稚日女尊)의 신으로서 태양의 여신이라 불린다. 오래 전에 세워진 유서 깊은 신사이지만 홍수와 전쟁, 한신 대지진 등 큰 재해가 있었어도 늘 피해를 입지 않아서인지 부흥의 신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이쿠타 신사에서는 종종 결혼식이 열려서 운이 좋으면 전통 결혼식 광경을 볼 수 있지만 물론 필자는 보지 못했다. 일본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분 이러한 신사를 찾아가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신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결혼식은 주로 신사에서 올리고 장례식은 기독교인이라고 할지라고 절에서 치른다고 할 정도이다.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만의 종교문화 풍습이라 토를 탈 생각은 없다.
또한 필자는 일본을 여행하면서 일본전역에 8만개 정도 신사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가는 곳 마다 신사가 존재하고 있었다. 원래 신사(神社)는 일본의 토착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참배하는 곳이다. 토착 신앙을 일명 신토(神道)라고 부른다. 처음에 신사는 악령에 대한 두려움과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에서 생겨난 일종의 민간신앙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마을마다 도시마다 신상에서 받드는 신들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 천황가의 조상신이라고 생각하는 천조 대신(天照大神)이 가장 많고, 역대 천황·유명 귀족·무사·문신·조상신 등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신사에 모셔놓기도 한다. 이와 같은 공식화된 신사 이외에 일본 지역에는 낯설고 이해하지 못한 신들을 모시는 곳이 많다. 여우를 제신으로 모시는 신사도 있고 개를 모시는 신사, 술의 신을 모시는 신사, 된장 신을 모시는 신사, 김치를 받드는 신사, 만두를 섬기는 신사, 부뚜막 신을 받드는 신사, 젓가락을 받드는 신사, 냄비를 받드는 신사, 굴뚝 신을 받드는 신사, 쌀을 받드는 신사, 물을 받드는 신사 등이 있고, 곳에 따라서 남근(男根)이나 여음(女陰)을 제신으로 하는 신사도 있다.
이처럼 일본은 800만의 신이 있는 신들의 천국일 뿐만 아니라 종교 간에 습합이 매우 자연스럽다. 유일신을 주장하는 기독교가 포교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절에 가서 신사를 볼 수 있고 신사에 가서는 돌부처를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본인들의 개방성과 보수성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인들은 새로운 문화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처음에는 모방하다가 다음에는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일본화 하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한자로 가나문자를 만들고 단층 우산을 2단, 3단 우산을 만들며 서양의 철판구이를 데판야기로 둔갑시키는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위에서 언급 한 것처럼 원래 신사의 출발은 민간 신앙이었지만 때에 따라 신사가 신앙의 장소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좋은 예로 일본 강점기에서는 신사 참배이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할 때 무력으로 통치한 것이 군대와 경찰이었다면 정신적으로 통치하는 도구가 신사(神社)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신성한 신앙의 장소인 신사가 정신적 지배 도구로 전략했다는 것은 일종의 종교타락이다. 종교 자체가 이미 타락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종교가 종교성을 잃으면 어떻게 변질되는 가를 확인할 수 있은 사례이다. 물론 종교가 지배의 도구로 사용된 경우를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아무튼 일본은 조선을 일본화하기 위하여 전국 방방곡곡에 신사를 세워서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일본어 교육을 강요함으로서 내선일치를 추구하였다. 내선일체는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이다. 신사 참배도 일종의 내선일체의 유형이다. 순수한 신앙의 장소가 지배의 도구로 바뀌어진 것이다. 경남 마산에 천조대신을 모시는 본전이 있었고 서울 남산의 조선신궁 비롯하여 인천, 목포, 부산, 진해, 진남포, 신의주, 용천, 성진 등지에도 신사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필자는 일본신사를 방문할 때 마다 가지마라야 할 곳을 간 곳처럼 개운하지 않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필자는 산노미야역 근처를 방문하고 난 다음 장소로 포트 아일랜드로 향했다.
포트 아일랜드, UCC 커피박물관
필자는 포트 아일랜드를 가는 길에 어려움이 많았다. 왜냐하면 오사카 여행을 처음 시작하면서 나라를 거쳐 고베를 방문하기 까지 구글 지도를 사용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계속 다른 방법으로 찾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겨우 모노레일 포트라이너 역을 겨우 찾아서 포트 아일랜드로 갈 수 있었다. 포트 아일래드는 모노레일 포트라이너를 통하여 접근하는 것이 편리하다. 필자도 그랬다. 물론 다른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택시나 버스로도 가능하다. 포트 아일랜드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섬이다. 1966년에 공사기 시작되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포트 아일랜드는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하나의 완성된 도시처럼 보인다. 산마르크 광장을 본뜬 시민과장을 비롯하여 대형 IKEA 쇼핑몰이 눈에 뜨인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관심을 가지고 방문한 곳이 UCC 커피박물관이다, UCC는 일본에 하나 밖에 없는 커피 전문박물관이다. 여기에서는 커피의 기원, 재배, 유통, 가공, 문화 등을 각 전시실을 통해 볼 수 있다. 또한 커피 볶는 기구, 커피관련 우표, 지폐등도 전시되어 있다.
세계 최초의 믹스커피는 한국에서 생겨났지만 캔 커피는 일본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에 처음으로 커피를 전달한 사람은 네덜란드인이다. 이때가 18세기 말인데 주로 당시에는 커피가 거의 약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일본에서 커피문화가 발전하게 된 것은 고베 항이 외국인들에게 완전히 개방되면서 부터이다. 이때 주로 커피를 주로 마시는 계층은 상류층이었고 주로 회원제 커피숍이 운영되었다. 캔 커피 아이디어 개발자는 우에세마 타타오이다. 그는 당시 커피에 빠져 커피 로스팅 도매업을 하는 역 매점에서는 밀크커피를 병에 넣어서 팔고 있었다고 한다.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면 병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병을 돌려주는 것이 낭비라고 여기고 돌려주지 않는 캔 커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캔 커피이다. 1969년 4월에 1개에 70엔 ‘UCC 코히 미루쿠’(밀크 넣은 커피)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캔 커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UCC 커피박물관은 규모면이나 내용면에서 손색이 없을 정도롤 훌륭한 박물관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커피 박물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규모가 UCC 박물관처럼 크지는 않지만 강릉, 제주, 파주 등의 지역에 커피 박물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한국에 있는 커피 박물관을 갈 기회가 있다면 방문할 예정이다. 필자는 커피 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바다의 만이라고 말하는 베이 에어리어 지역인 고베 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베이 에어리어지역인 고베 항 지역에는 고베 모토마치와 고베 하버랜드가 있다.
고베 모토마치 神戶元町(신호원정)
고베의 도심부인 모토마치는 역사 깊은 상점가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에도 시대에 교통의 요지로서 사이고쿠가이도(西国街道)를 따라 형성된 지역인 모토마치는 1868년 개항 후 크게 발전했으며 오사카와 연결되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더욱 번화했다. 모토마치 도리 1초메 부근에 외국인 거류지가 생기면서 이곳은 고베에서 첫째가는 서양풍 상점가로도 유명해졌다. 그래서 모토마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고베의 대표적인 거리가 되었다. 모토마치는 약 1.2km에 이르는 아케이드형 상점가이다. JR 모토마치 역과 고베 역을 연결하는 선로와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의 1번 가에서 서쪽의 6번 가까지 약 330채의 상점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도 어떤 도시못지 않게 활기찬 상가가 형성되어 국제도시답다. 많은 외국인들이 쇼핑을 즐기는 곳인 1번가에서 2번가 까지이다. 여기에는 고급 상점이 많아 통상 1번가라고 부른다. 1830년에 창업한 일본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판매한 찻집 자호호코도도 있고 1873년에 문을 연 고베의 명물 가와라센베를 파는 가메이도 총본점 등 전통 있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거리를 걷기만 해도 고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덴마크 치즈케이크를 맛볼 수 있는 간논야나 1949년부터 영업한 모토마치 케이크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맛 집이다.
모토마치 상점가의 남쪽은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으로 꼽히는 난킨마치로 이어진다. 난킨마치[南京街]는 1번가와 2번가 사이에 있다. 난킨마치에는 이색적인 수입 중화요리 재료를 파는 노점이 있다. 여기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만두를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대조적으로 4번가에서 6번가까지는 고서나 골동품 등을 파는 차분한 분위기의 상점이 많다. 그리고 모토마치역의 고가 밑에는 상점가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이곳에서는 서민적인 물건과 일본의 오타쿠[お宅]들이 자주 찾는 게임·애니메이션 관련 물품을 주로 판다. 모토마치는 일본의 대표적인 쇼핑타운으로 손색이 없어보인다. 필자는 모토마치를 탐방을 마치고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고베 하버랜드로 향했다.
고베 하버랜드
베이에어리어는 고베 항구지역이다. 오랜 항구로 외국문물이 활발하게 드나든 덕분에 색다른 문화를 맛 볼 수 있는 이색 지역이다. 이곳에는 간사이 최고의 차이나타운 난킨마치와 고베 포트타워와 고베 해양박물관의 불빛이 환상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 낸다. 밤이 되면 누구에게나 감동이 되는 정말 아름다운 항구가 된다. 고베항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메리켄 파크와 하버랜드 일 것이다. 메리켄 파크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 눈여겨 볼 곳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지역인데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메리켄 파크 공원은 고베 대지진을 추모하고자 만들어진 공원으로 일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공원이 될 것이다.
하버랜드는 화물역을 1992년에 새롭게 조성한 재개발발지역으로 ‘바다와 연결하는 문화도시의 창조’라는 테마로 조성되었다. 여기에서 여러 쇼핑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자이크, 하레, 캐널 가든 등이 우미에 라는 이름으로 통합하여 부른다. 우미에 모자이크는 야경을 볼 수 있는 복합 상업 단지이고 여기에는 패션, 식당, 극장 등이 모여 있다. 그리고 2층, 3층에는 바다 너머에 고베 포트 타워, 고베 해양 박물관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고베 대지진이후 지역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유원지가 있다. 그러나 현재 다른 놀이 시설은 사라지고 대관람차 만 남았다. 이 대관람차는 1995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대관람차에 조명을 단 것은 세계 최초였다고 한다. 필자도 대관람차를 아이들과 흥미롭게 시승했다. 대관람차에서는 메리컨 파크의 화려한 야경과 7000개의 조명으로 비추는 고베 포트 타워의 빛의 향연을 볼 수 있었다.
아리마온천(有馬溫泉)
아리마 온천으로 가는 방법은 오사카에서 출발할 경우 한큐전철로 출발하면 된다. 물론 가는 방법이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사카나 고베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물론 자주 있는 것이아니다. 그러나 가장 쉽고 편하게 가는 방법은 일단 고베 산노미야역으로 이동한뒤 전철이나 지하철을 아용하는 방법이다. 필자도 우메다(梅田) 역에서 산노미야(阪急三宮) 역에 하차, 고베 시영지하철(神戸市営地下鉄)을 이용하여 신고베(新神戸) 역으로 가서 호쿠신 급행(北神急行)을 타고 다니가미(谷上) 역으로 이동한 후 고베 전철 아리마(神戸電鉄有馬)센을 이용하여 아리마 온천(有馬溫泉) 역으로 이동했다. 아리마온천은 전형적인 산골지역이라 가는 길이 보기보다 아주 복잡하다. 필자도 전철, 지하철 여섯 번 환승한 걸로 기억된다. 물론 간사이 쓰루 패스를 이용하면 무료이다.
아리마 온천의 역사는 아주 오랜 전 신화시대에 大己貴命(오나무치노미코토)와 少彦名命(스쿠나히코나노미코토)가 산골 아리마 고장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의 김을 발견한 것이 기원이라고 전한다. 온천을 사람들이 개발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암벽이 갈라져 그 틈 사이로 온천수가 분출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로부터 아리마 온천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나라시대 때 온천의 의료효과를 인정한 승려 行基(교키)가 온천사를 건립하고 그 영향을 받아 가마쿠라시대 승려 仁西(닌사이)가 약사여래인 12신장을 모방하여 12개의 숙소를 연 것이 계기가 되었으며 그리고 6세기경 일본 천왕 가족들이 방문하고 난 다음부터이고 16세 세기경에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재정지원으로 보수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 탄생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온천의 번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라고 볼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千利休(센노리큐)를 데리고 가끔 아리마에 들려 다과회를 가졌는데 매년 가을 마다 열리는 즈이호사 공원의 아리마 대다과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을 추모하는 것으로 끊인 차를 바쳤다. 이 처럼 일본의 최고의 역사를 가진 아리마의 온천에는 몇개의 원천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덴만구 경내에서 끊임없이 온천의 연기를 뿜어내는 텐진온천, 아리마 온천의 대표 원천으로 지하 185m에서 올라오는 90도가 넘는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오른다. 주위를 보면 철 성분은 많아 산화된 철이 온통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에피소드가 있는 우와나리 온천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와나리 온천은 잘 차려입은 여성이 앞에 서면 질투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옛날 질투심이 휩싸인 여성이 남편의 애인을 죽이고 자살하기 위해 뜨거운 온천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뒤 아름답게 화장을 한 여성이 옆에 서면 또 뜨거운 물을 분출시켜 화상을 입게 했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이 미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멀리 떨어져서 구경해야 한다고 애기가 내려오고 있다.
오사카 시내에도 여러 온천 테마파크가 있다. 시설도 물론 현대식으로 시설이 아주 훌륭하다. 간사이 쓰루패스가 있으면 입장료가 무료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오사카 시내에 있는 온천은 일본의 전통 온천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전통 온천을 경험하고 싶다면 고베 지역의 아리마온천(有馬溫泉)을 추천하고 싶다. 아리마 온천 지역의 대표 온천으로는 킨노유(金の湯) 온천과 긴노유(銀の湯) 온천 그리고 다이코노유(太閤の湯) 온천 등을 꼽을 수 있다. 아리마 온천에는 두 종류의 온천탕이 있는데, 하나는 철과 염분 때문에 물의 색이 황갈색을 띠고 있기 때문에 '금탕(金湯)'이라고 부르고, 다른 하나는 라듐과 탄산염을 함유하고 있고 물의 색이 무색이기 때문에 '은탕(銀湯)'이라고 한다. 필자도 아리마 온천 중에서 킨노유(金湯)에서 여독을 풀었다. 비록 규모는 한국에 있는 목욕탕 수준으로 보잘 것이 없지만 과히 '금탕(金湯)'이라고 할 만큼 물의 빛이 황갈색을 띠고 있었다. 킨노유(金湯) 온천의 경험은 전에 한 번도 느끼진 못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로 생긴 특별한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경우 특히 남탕에서는 목욕 후 수건을 주는 것 일반화되었다. 그것 믿고 당연히 수건을 줄 것이라고 믿고 들어갔는데 목욕 후 제공되지 않아 선풍기로 물기를 닦는 해프닝이 발생한 것이었다. 아주 난감하고 비참한 경험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 차이가 분명함을 보여준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아리마 온천 지역에는 위에서 언급한 장소 외에 아리마 강이 흐르는 분위기 있는 신스이공원, 아리마 온천의 중심이 거리인 유모토자카,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장난감 박물관인 아리마 완구 박물관, 고베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건물을 복구하면서 발견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탕과 정원이 발견된 타이코노유도노칸쿄키이다. 타여기에는 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는데 당시 암석온천, 찜질방등의 유물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아리마 온천의 관계를 보여주는 문서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승려가 병자를 온천에 데려다 주자 부처가 되어 떠났다고 전해지는 온천사 등이 있다. 특히 온천사는 교키가 그 부처의 모습으로 불상을 만들고 사당을 지어 안치한 곳이며 또한 아리마 온천을 부흥시킨 닌사이 목상등도 있다. 원래 온천사 건물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82년 다시 복원되었던 건물이다.
이제 필자 일본의 인문학 여행 이야기의 두 번째 고베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고베는 교토처럼 역사의 도시도 오사카처럼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도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베는 오사카와 교토를 좋은 점만을 추려 놓은 도시로 보인다. 고베는 교토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지도 별로 없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때 외국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지역답게 국제적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포트 아일랜드 아름다움과 하버랜드 일대에 화려한 쇼핑타운이 그렇다. 롯코 아일랜드부터 하버 랜드까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야경의 아름다움은 역시 세계의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고베 지진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장소를 탐방하면서 자연재해에 대한 성찰하는 좋은 계기가 되어서 뜻 깊은 여행으로 기억된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한 것처럼 여행은 색다른 영감을 가지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2017/ 10/10 / 혜윰인문학연구소 / 뜨르
'▣혜윰인문학▣ > 인문학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 인문학여행 이야기 5 - 오사카 : 문명과 문화 편집증 - 오사카성,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오사카 역사박물관, 츠텐카쿠 히타치 (0) | 2019.04.04 |
---|---|
일본 인문학여행 이야기 4 - 교토(Kyoto, 京都) (2) : 극단, 절대미, 정원 그리고 사찰 (0) | 2017.12.31 |
일본 인문학여행 이야기 3 - 교토(Kyoto,京都) (1) : 교토의 역사와 조선인들의 아픔의 흔적- (0) | 2017.12.28 |
일본 인문학 여행 이야기 1 -나라시대(奈良時代)의 한국인의 흔적: 코후쿠지, 토다이지, 도래인 이야기, 정창원- (0) | 2017.08.30 |
인도 40일 배낭여행 (0) | 2010.07.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