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lit Theology과 에큐메니칼 윤리
Ⅰ. 들어가는 말
인디아는 ‘종교의 나라’로 불린다. 힌두교외에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도 있으며, 불교가 생겨난 나라이다. 단순히 세계의 중요한 종교가 모두 망라된 정도가 아니라 그만큼 종교가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1981년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인디아 인구의 약 82%에 해당하는 549,779,481명이 힌두교인, 약 11% 정도인 75,512,439명이 무슬림, 그리고 2.6%인 16,165,447명이 그리스도교인이다. 그리고 이들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약 60%에서 75%정도가 달리트 출신들이다. 본 발제자는 약 한 달반 동안 인도 전지역 (Delhi, Jaipur, Agra, Bodhgaya, Varanasi, Calcutta, Shantiniketan, Chennai, Bangalore, Bombay) 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여행은 필자에게 달리트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며 발제하는데 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먼저 본 발제는 달리트의 의미와 달리트의 신학을 고찰해보고 에큐메니칼의 윤리의 시각에서 달리트 신학과 달리트 신학의 전망을 살펴봄으로서 논문를 전개할 것이다.
Ⅱ. 달리트(Dalit)의 의미와 달리트 현실 실례
1. 달리트(Dalit)의 의미
카스트제도에서 특히 문제시 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불가촉천민(the Untouchable) 인 달리트의 존재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달리트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인디아 마하라 시트라주 출신으로서 불가촉천민 해방 운동에 뛰어 들었던 마하트마 조티바 풀레이다. ‘달리트(dalit)’란 카스트 힌두교 사회에서 四계급 즉,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에도 속하지 못한 카스트 밖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다. ‘달리트’(dalit)의 사전적인 어원 은 ‘금이 가다,’ ‘열다,’ ‘쪼개다’ 등의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달’(dal)에서 파생된 말로서 ‘학대받는,’ ‘짓밟힌,’ ‘파괴된,’ ‘흩어진’ 등의 의미를 갖는다. 원래는 억압을 뜻하는 단어였지만 19세기 마라티(Marathi)의 사회 개혁가이며 혁명가였던 마하트마 조티바 풀레(Mahatma Jotiba Phule, 1827-1890)에 의해서 처음으로 카스트 제도로 인해 희생, 착취, 억압받아온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달리트’라는 용어가 오랜 역사의 억압을 나타내는 용어였으며 또한 현재의 약탈당하고 억눌린 상태를 가리키는 다분히 이념적 용법으로 사용된 것은 1970년대 마하라슈트라의 달리트 팬더 운동가들에 의해서였고, 이들로 인해 ‘달리트’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퍼지게 되었다.
달리트 팬더 운동(Dalit Panther Movement)이란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해방 운동의 노선을 지향하는 운동으로서 1972년 인디아 마하라스트라 주 뭄바이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미국의 흑인 해방 운동 노선과는 달리 단순히 폭력 노선만 제기한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달리트 정치 운동을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달리트들의 정치의식을 제고시키고 정당도 건설했다. 또한 달리트 문학운동도 추진하여 대중적인 문학 작품들을 선보였고, 문화적인 정체의식도 상당한 정도로 향상시켰다. 달리트 팬더 운동은 이후의 모든 달리트 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달리트 해방 운동의 선구적인 위치에 서서 달리트 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오늘날에 와서 ‘달리트’라는 말은 카스트에 기초한 힌두사회에서 네 가지 종성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카스트에서 제외되어 수세기에 걸쳐 억압과 착취를 받으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온 카스트 밖의 사람들(the out-castes)을 가리키는데 사용된다.
이들은 ‘불가촉민’(the Untouchable) ‘하리잔’(Harijan) ‘빠리아’(Pariah)‘전-불가촉민’(the Ex-Untouchable) ‘지정보호 카스트’(the scheduled castes) 등으로 달리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달리트’라는 명칭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위해 선택한 것으로 자신들의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무엇라 불리는지는 그들의 자기 정체성과 사회적 이미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달리트’라는 용어는 단순한 명칭이라기보다는 잃어버린 인간성과 정체성을 되찾으려 하는 그들의 희망이 담긴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달리트가 되었을까? 달리트는 왜 힌두교 사회에서 소외되어 차별과 억압을 받아야만 했을까? 카스트 힌두사회에서 달리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달리트로서 낙인찍힌다. 달리트라는 생득지위는 개인이 직업을 전환하거나 부의 축적을 통해 얻게되는 획득지위를 통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지역마다 다르기는 해도 ‘불가촉천민’이라 낙인 찍힌 사람들에 대한 종교적 혐오감과 편견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달리트가 경험하는 인간이하의 삶은 카스트 힌두 사회 속에서 출생부터 시작해서 일생동안 겪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달리트들로 하여금 그들의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카스트라는 위계질서이고 힌두경전과 법전이 그 안에서 달리트의 열악한 위치에 대한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따라서 힌두교는 이들을 달리트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2. 달리트의 현실의 실레
1) 한 달리트 어린 아기가 마을 우물에 빠졌다. 아기 엄마가 달려가서 급히 아이를 구했는데 문제는 달리트 아이를 방치해서 마을 사람들이 먹는 물을 더럽혔다고 아이의 아버지가 불려가서 채찍으로 매를 맞았다.
2) 구자라트 주 카비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달리트 집에 일어난 사건이다. 달리트 집에 불이 났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집의 아이들이 학교를 갔다는 이유로 집에다 불을 질렀다는 것이다.
3) 아그라 변두리 달리트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달리트 출신의 한 사람이 그들이 신봉하는 비시누신을 그것도 자기 집에서 경배드렸다는 이유 하나로 그 사람을 죽도록 패고 입에다. 오물을 넣었다고 한다.
Ⅲ. 달리트(Dalit) 신학
1. 달리트 신학의 출현
힌두 사회 전반에 편재한 달리트에 대한 편견과 교회내에 카스트 의식 때문에 달리트 크리스찬들은 삼중의 차별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삼중의 차별로 인해 달리트 크리스찬들은 정부특별법의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 거꾸로 힌두교로 되돌아가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생겨났다. 또 도시와 시골의 가난한 달리트 크리스찬들은 그들의 경제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인과 하리잔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달리트와 소수종교와 관련된 폭행이 증가했다. 게다가 80년대의 전반기에는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이 교회 안에 편재한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한 항거로 이슬람으로 다시 집단 재개종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아래서 인디아 신학은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디아 신학은 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상위 카스트 출신들에 의해 형성되었고 그들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문제의식은 다수인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것과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의 신학적 관심이 자신들이 성장한 기성 힌두교 사상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신앙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변증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 형성된 신학은 달리트들의 문제를 반영하지 못했다. 즉, 기성의 인디아 신학은 달리트들의 고통과 희망을 책임지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신학이 요청된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의 재해석을 통하여 달리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등장한 일련의 작업이 달리트 신학이다.
2) 달리트 신학의 주된 목적과 내용
그렇다면 인디아의 고유한 해방의 주제를 다루는 ‘달리트 신학’의 주된 목적과 내용은 무엇인가? 달리트 민중들은 전체인구에 1/5에 육박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인디아의 그리스챤의 경우 약 2000만 교회인 가운데 절대 다수가 달리트 출신들이다. 인디아는 힌두교 지배 아래에서는 카스트제도를 벗어나기 어렵지만 이미 무슬림이나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은 카스트제도를 첼폐한지 오래다. 그러나 주류사회의 엄격한 신분 제약 때문에 수천가지나 되는 카스트 구분을 쉽게 벗어버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달리트들은 농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힌두교의 분위기 상 도저히 빠져나가기 어렵다. 인디아의 인규 90%가 힌두교라고 하는 만큼 달리트들에게 가해지는 힌두교 영향력은 막강하고 바로 직전의 계급인 수드라의 장인한 억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달리트들은 여전히 힘없고 가난한 불가촉 천민인 것이다. 인디아는 아직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지배계급들의 자본주의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는 오래된 힌두교의 지배 질서 아래에서 굳어진 것이다. 따라서 인디아라는 사회는 기득권층의 두터운 지배체제 아래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폐쇄적인 사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디아 사회는 21세기 접어들어서 세계화의 추세에 의하여 일부 개방되는 듯 보이지만 카스트 밖에 있는 아웃 카스트들에게 해방의 영향이 미칠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
달리트 신학은 평등주의적이고 인간가치체제를 양성하려는 신학적인 노력의 산물로 힌두 사회의 피라미드의 맨 아래를 차지하는 달리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달리트 신학은 기본적으로 달리트들에 의한, 달리트들에 의한 달리트들의 신학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신학적 작업에서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달리트들의 주체성을 확립시켜줄 수 있는 그들의 역사와 그들의 현실에 대한 분석이다. 이러한 점에서 달리트 신학은 상위 카스트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기성 인디아 신학에 대한 반-신학(counter theology)으로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성 신학이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사실을 변증하고자 했다면 달리트 신학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용어보다 ‘달리트’라는 용어를 더 중요시하며 상위 카스트 출신 그리스도교인들의 신학적 작업이 주로 공식 언어를 통해 이루진 것에 비해 달리트 신학은 대중인 달리트들의 언어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점을 역설하기 때문이다. 또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달리트 신학은 무엇보다도 힌두사회의 기성질서 속에서 훼손된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인간의 평등, 정의, 자유 그리고 존엄성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통해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달리트 신학은 달리트들의 정체성을 훼손시켜 온 기성 브라만 중심의 힌두 문화에 대한 반-문화로 이해될 수 있다.
달리트들의 문제를 정체성의 회복과 관련하여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카스트 제도의 영향하에서 달리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상위 카스트 사람들에 의해 달리트들의 영적인 능력이 평등하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 있었다. 카스트 위계사회 속에서 그들은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용서받지 못했다는 무의식적인 죄책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부끄러움과 의기소침함을 가져다주었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오염되었다는 생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따라서 달리트 신학은 무엇보다도 다른 달리트 운동에서 다룰 수 없는 ‘영혼의 불행’을 치유하는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궁극적 달리트들은 기성의 억압된 질서로부터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 이것이 달리트 신학의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러한 ‘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리트 신학은 기본적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해방성을 부각시키며, 출애굽의 하느님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서의 증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들의 신학적 작업이 이론적으로는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성서와 그리스도에 대한 재해석에 머물러 있고 실천적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상황분석에 치중하고 그 분석을 근거로 당위적인 부분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달리트들의 인권확보와 사회개혁을 위한 일종의 신학적 운동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의 현실이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이 역할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달리트 신학은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희망의 복음이 되고 있으며 현대 힌두 사회와 그리스도교회 공동체에 커다란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달리트 신학이라는 것은 힌두 사회와 교회에 편만한 카스트주의에 대한 반발과 정의를 위한 달리트들의 기대라는 맥락에서 나타난 것으로 카스트 힌두사회의 위계와 차별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힌두교의 불평등한 제도를 비판하기 위한 신학적 작업이고
또 인디아교회 성원의 대부분이 달리트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그리스도교 신학이 달리트들의 문제와 그들의 투쟁의 보다 깊은 차원 그리고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기 비판하에 달리트들에게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새로운 신학에 대한 요청에 부응하고자 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달리트 신학은 직접적으로는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이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만 단순히 달리트 그리스도교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디아의 달리트 투쟁을 위한 그리스도교적 입장의 정립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달리트신학은 인디아 사회에서 교회 내적 의미와 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Ⅳ. 에큐메니칼 윤리와 달리트신학
그러면 달리트 신학의 에큐메니칼 윤리적 접근을 시도해 보자. 인디아의 전통적인 신분 제도인 카스트(Caste) 제도에 눌려서 3500년이상 착취당하고 소외되어 왔던 불가촉 천민들이 달리트(Dalit) 민중들의 해방 문제는 인디아 뿐만아니라 현대사회의 문제이고 에큐메니칼 윤리의 중심 과제가 되고 있다. 달리트 신학은 이러한 카스트제도에 억눌려서 신음하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에 대한 교회적인 관심이 신학적인 주제로 발전하여 에큐메니칼 윤리의 출발점이 되었고 인간해방을 위한 기독교의 대안으로서의 실천 과제로서 등장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달리트신학은 에큐메니칼 신학이다. 에큐메니칼한 연대의식을 통하여 교파를 초월하고 교리를 극복하면서,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의 목자이신 하나님과 인간 해방의 평등한 공간이 되어 있는 교회를 새롭게 하는 신학적 접근이 되고 있다. 이미 인디아 크리스찬 달리트들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연대와 지원 속에 이제는 이제는 흑인 정권이 들어서 백인들의 흑인 분리정책을 철폐시킨 남아프리카 흑인 해방운동 이후 지구촌 최대 과제로서 달리트신학과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원아래 달리트 해방운동이 강화되었고 이것을 토대로 DSP(Dalit Solidariry Programme)라는 인디아 달리트 해방 프로램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에는 기독교인 신학자와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달리트 크리스찬 해방운동이라는 운동체가 결성되었다.
그리하여 1983년 『달 리트 신학을 향하여』 라는 첫 번째 공동 저서를 출판하였고 이어서 『달 리트 해방의 공동 이념을 향하여』라는 공동 저서를 출판하여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이러한 흐름은 곧 국제사회에 큰 호응을 얻어 각 대학교와 신학교에서는 달리트 연구와 달 리트 신학부가 설치되었다. 또한 북 인디아 교회에서는 제임스 마시이(James Massey) 박사를 중심으로 달리트 출신들이 조직화되고, 달리트 뿌리를 찾아 나가는 신학적인 작업을 계속하여 1984년부터 달리트 신학의 정체성을 에큐메니칼 신학에 설정하고 많은 양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1997년에 WCC 출판부에서 나온 『Downtrodden:Dalit Struggle & Identity』이다.
Ⅴ. 달리트 신학의 전망
그동안 달리트 운동은 현장 활동가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에큐메니칼 연대조직 참여 속에 인디아 현지에서 일어나는 철저한 달리트 투쟁을 토대로 하여 전개되어 왔다. 특히 현장 활동가들의 조직 운동은 주로 농촌에서의 농업노동자 조직과 사회 보호시설을 가지고 교회와 연대해 왔다. 밖으로는 에큐메니칼 조직들이 후방 지원을 강화하여 여기에서 얻어지는 정보 및 자료를 가족 운동의 저변을 확대해 왔다. 이러한 현장과 후방 지원 관계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지만, 여기에 신학 교육기관이 가세하여 교회나 사회 복지 시설들을 가지고 달리트들을 돌보고 지원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인디아 달리트들은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식량조차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달리트들의 의식주 문제 해결과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사회 안전망 구축이 무엇보다도 필수불가결한 문제이다. 카스트들의 차별 받고 억압 받는 구조에서 하루 속히 해방되기 위해서는 카스트 제도 철폐를 강력히 요구한다. 달리트 문제의 가장 직접적인 과제는 인권유린이다. 1999년 3월에 아시아인권위원회(Asia Human rights Commission)가 발표한 달리트 인권헌장은 최근 인디아 달리트 인권유린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제 인디아에서는 한 시간에 2명씩 달리트들이 폭행당하고 있고, 하루의 3명이 달리트 여성이 강간당하고 있으며, 하루에 2명이 살해당하고, 하루에 2채의 달리트 주택이 방화당하고 있다. 달리트들에게 가해지는 이 무수한 폭력 행위와 살해 위협은 심각한 문제이다. 태생적으로 하위 카스트로 살고 있는 가운데 상위 카스트들의 박해는 위헌 수위를 넘어섰고, 사회적 약자로서 어떤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달리트들의 삶의 현실은 처절하다.
인디아에서는 여전히 상위 카스트들이 기존 권력층과 결탁하여, 달리트들의 사회적 진출 및 정치적 영향력 증대에 압도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권유린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현 단계에 달리트 신학의 최대 과제는 인권유린에 대한 국제적인 감시활동과 신학적인 증언이다. 마지막으로 달리트 신학의 21세기적인 전망의 단초는 달리트 민중 중심의 운동과 달리트 해방을 위한 연대로 조직화 되고, 해방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이다.
Ⅵ.나오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달리트 의미, 달리트 신학, 에큐메니칼 시각에서 본 달리트신학, 달리트 신학의 전망을 살펴보았다. 달리트 신학은 우리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수 많은 질문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로써 신학적 응답을 해야 할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인디아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강자가 많고 중산층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달리트가 살고 있는 나라가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일지라도 그들의 삶은 신성시해온 계급차별의 지배를 받고 있다.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는 3천 5백년 동안 인간을 계급과 하는 일에 따라 엄격히 등급을 매겨왔다. 그들은 힌두교 사원도 출입할 수 없으며 시골지역에선 상층계급 지주들로부터 희롱, 강간, 폭력을 당하기 일쑤다. 2000년 5월에 비하르주에선 한 민병대가 미아푸르 마을 습격해 하층계급 주민 35명을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중 8명이 달리트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달리트 신학이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달리트들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적 해방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아의 교회가 거의 2 천년에 달하는 교회의 관습을 끊고 달리트 신학을 통해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확립해주고 희망을 제시해 주었다, 또한 에큐메니칼 신학을 통하여 달리트들을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던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본 발제자는 우리들이 에큐메니칼 윤리의 입장에서 인디아의 달리트들을 발제를 통하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다. 아마 지금도 인디아에서는 달리트들은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200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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