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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공감〓/〖여행·예술〗공감

청송 주왕산 주산지 왕버들의 비밀

by 뜨르 K 2020.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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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르나19 극복 3탄: 청송 주왕산 주산지 왕버들의 비밀

 

 

얼마 전 청송 주왕산 주산지에 다녀왔다. 청송은 처음 여행길이다. 옛말에 청송은 '끝없는 산길을 걸어 고개를 넘고 계곡을 지나야만 당도하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지형이 험준해 가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청송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고개 하나쯤은 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주산지에 가는 길도 작은 고개 두어 개는 더 넘어야만 도착한다. 꼬불꼬불한 길도 넘어가야 한다. 비록 가는 길은 험하지만 풍경은 도리어 아름답다.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과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늦게 만개한 벚꽃이 양쪽에서 우리를 환영해 주기 때문이다. 주산지는 주왕산 별 바위골 끝자락에 아름답게 비밀처럼 숨겨져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수줍은 색시처럼 말이다. 저수지 주위는 주왕산 자락이 뻗어 병풍으로 들려 쌓여 있다. 손으로 호수를 감싼 듯한 모습은 푸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울창한 수림에 안긴 저수지는 은은히 하늘을 여는 듯하다주산지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다. 2004년 대종상영화제에서 수상한 대작이지만 미투 여파로 영화와 관련된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웠다.

김기덕 감독: 봄, 여름, 가을, 겨울
주왕산 주산지 전경

주산지는 1720년 8월 조선 경종 원년에 착공하여 다음 해에 완공했다고 한다. 거의 300년을 지켜온 저수지이다. 저수지 모퉁이에는 수지 축조에는 월성이씨 처사(處士) 이진표(李震杓)의 공이 컸다고 한다. 주산지 입구 바위 위에 이진표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靑松 注山池를 築造한 處士 李震杓 頌德

주산지 공덕비

공적비 앞면에는

'乾隆三十六年辛卯十月日立  李公堤堰成功頌德碑  一障貯水 流惠萬人  不忘千秋 惟一片碣' 쓰여 있는데 해석에 의하면 '1771년(영조 47) 시월에 세우다.  이공의 제방축조 성공을 기리는 송덕비 정성으로 둑을 막아 물을 가두어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한 조각 돌을 세운다.'라는 시가 있어 주산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저수지 크기는 작지는 않다. 입구가 협곡이다. 축조 당시 규모는 주위가 1천1백80척 수심 8척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수차례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는 제방길이 63m, 제방높이 15m, 총저수량 105천톤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물은 주산현(注山峴) 꼭대기 별 바위에서 계곡을 따라 흘러 주산지에 고여 생명을

움트게 한다.

주산지 백미는 단연 물속에 놓여있는 왕버들이다. 1720년 주산지가 조성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현재도 왕버들 고목이 물에 잠긴 채 30그루 정도가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듯 연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수면에서 큰 줄기가 뻗은 왕버들은 주왕산 주산지 말고는 찾기 어려운 장관이다. 이곳의 왕버들 수령은 대부분 300년 이상 되는 고목이다. 자세히 보니 그 모습 또한 신비롭다. 왕버들을 무심히 쳐다봐도 지루함이 없다. 편안함 그 자체이다. 아니 행복감마저 든다. 코르니 19로 지친 마음을 달래듯 말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버드나무의 종류는 수양버들, 능수버들, 용버들, 왕버들, 갯버들, 떡버들, 호랑버들 등 40여 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주위에서 보는 대부분 버드나무는 한국산 버드나무인 능수버들과 수양버들이다. 가지가 길게 늘어지는 버들이다. 신윤복의 그림에 등장하는 나무도 그러하다. 그 가운데 왕버들만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성주군에 있는 성밖숲이 우리나라에서 최다의 왕버들 숲이다. 무려 59그루의 왕버들이 천연기념물이다. 필자가 사는 구미에도 260년으로 추정되는 왕버들이 도개면 궁기리와 옥성면 주아리에 있다.

왕버들의 사계

필자가 오래전에 경남 창녕 우포늪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의문 중 하나가 물속에서 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 그 나무가 바로 왕버들이었다. 대부분 왕버들은 물가 옆에 살지만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주산지 왕버들은 물속에서 호흡하기 위해 호흡근을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왕버들이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것이다. 거의 모든 나무는 물속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오직 왕버들만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호숫가를 비롯한 물이 있는 곳을 선택한 것이다. 청송 주왕산 주산지 왕버들이 호수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주위에 물이 있는 곳 옆에 어김없이 왕버들 등 버드나무를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왕버들의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왕버들의 유연함

또한 왕버들을 비롯한 버드나무 가지의 유연함은 부드러운 여인을 상징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던 이별 장소인 나루터에서는 버드나무가 있었고 떠나는 님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말없이 사랑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만큼 버드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나무이며 많은 시인들의 사랑을 받았다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 버드나무를 소재로 한 시가 50편이 넘는다고 한다. 이처럼 왕버들을 포함한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유승강(柔勝剛) 정신이 왕버들에 있다. 명심보감 계선편에 유승강(柔勝剛) 약승강(弱勝剛) 고설능존(故舌能存) 치강칙절야(齒剛則折也) 말이 있다. 즉 연한 것은 억센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은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기에 혀는 부드럽기에 그대로이나 이는 강하기에 부러진다. 이 말은 왕버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신윤복의 기다림, 양류관음보살

불교에서는 부처가 오른손에 버드가지를 쥐고 양류 관음이 세상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고 중생의 병을 치유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을 양류 관음보살이라 한다기독교에서도 복음의 상징으로 말한다 구약엔 버드나무가 여러 곳 등장한다. 23:40에서 초막절에 여호와께 드리는 4가지 식물(아름다운 나무 실과, 종려 가지, 무성한 가지, 시내 버들) 중 하나로 나타나며, 17:5~6'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되어'라고 언급하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44:3~4)  그 밖에 버드나무는 양류(楊柳)라는 이름으로 예로부터 분청사기, 회화 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대표적으로 조선 말기의 풍속화가 신윤복의 <봄 나들이><기다림>이 버드나무의 상징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버들가지 사뿐사뿐 날리는 마을 어귀에서 한 여인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이런 여성성을 상징하는 버드나무가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천대를 받는다고 한다. 나약하고 흔들림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버들을 심지 않는다고 한다.

주산지 가는 길

이러한 왕버들을 비롯한 버드나무는 인간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 아스피린의 원조가 버드나무이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환자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자 버드나무 잎을 씹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버드나무에 살리신(salicin)이라는 성분이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버드나무는 하천의 수질 정화에도 탁월한 능력이 있다. 이처럼 왕버들은 세찬 바람에도 꺾이는 법이 없는 유연함과 물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정화능력 등이 있다. 이것이 청송 주산지 왕버들의 비밀이다. 우리 사회도 왕버들처럼 사유의 유연함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온갖 더러움이 제거되는 세상을 바라본다. 주산지 왕버들이 300년 동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묵묵히 서 있는 것처럼 말이다. 2020/04/22 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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