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매그넘 포토스: 매그넘 인 파리 Magnum in Paris 사진 전시회를 다녀와서
“파리에서는 누구나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구경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장 콕토 -
대구 MBC 특별전시장 엠카에서 열리는 ‘매그넘 인 파리 Magnum in Paris’ 사진 전시회에 다녀왔다. ‘매그넘 인 파리 Magnum in Paris’는 프랑스의 역사·문화·예술 등 파리 시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작가의 눈으로 진솔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매그넘’ 출발은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에 프랑스 파리 한 선술집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술병(매그넘)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자유 보도사진 그룹을 결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이라고 한다. 그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다. 아니 특별한 영감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 해 본다.
세계 최고 사진가들의 눈으로 바라본 파리(Paris)은 어떤 모습일까? 문외한인 필자에게 사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좋은 기회이었다. 그것도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이 예술의 도시 파리를 찍은 작품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진마다 색감이 다르다. 사진 찍는 앵글의 각도도 다르고 방향도 다르다. 그리고 공기도 다르다. 사진에 촬영한 사람에 따라 생각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높이를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왜 사진사를 굳지 사진작가라고 하는지를 조금 이해가 되는 듯했다. 필자가 예전부터 늘 생각한 사진이 기록의 도구인 재현성인가? 아니면 예술인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 어렴풋이 해소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아주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진을 통해서 세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왜 사진을 통해서 기록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필자와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이제 본격적으로 매그넘 포토스 세계에 빠져보자.
파리는 세계 최초로 사진을 발명한 프랑스의 미술가이자 사진가인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가 『탕플대로』라는 첫 번째 사진 작품을 남긴 도시라고 한다. 또한, 사진술 발명에 맞서 인상파 화가들이 자신들만의 새로운 회화기법을 발전시킨 역사적 장소기도 하다. 파리는 세계 역사에서 혁명의 깃발을 가장 많이 세운 도시. 명품과 사치의 상징으로, 세계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든 곳, 세계 예술사에 획을 긋는 아지트 등 이 모든 것이 파리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파리를 꿈꾸는지 모른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는 파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파리는 하나의 괴물 같은 기억, 운동들과 기계 그리고 관념들의 놀라운 조합이며, 수많은 로맨스가 펼쳐지는 도시이고 이 세계의 ‘생각 상자’이다.”라고 찬미했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헤밍웨이도 “아직도 파리에 다녀오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디를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오드리 헵번은 “파리는 언제나 좋은 생각이다”, 헨리 밀러는 “파리를 이해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토마스 제퍼슨은 “파리는 모든 사람에게 제2의 고향이다.”, 게루트 스타인은 “파리는 20세기 그 자체이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말하고 음미했다.
파리는 이처럼 천의 얼굴을 가진 도시, 예술의 수도로 불린 도시로 전 세계의 소통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파리에 ‘매그넘’ 작가 39명이 포착한 파리 풍경 약 400여 점을 볼 기회였다. 물론 그들은 세계 사진사에 아주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비롯하여 로버트 카파, 마크 리부, 엘리엇 어윗 등의 작품들이 선보였다. 그들의 사진에는 프랑스혁명 200주년 기념 퍼레이드, 1968년 학생저항운동인 68 혁명 시위 장면, 1940년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하는 여성, 비 오는 에펠탑 앞에서 우산 쓴 채 춤추는 시민들의 모습도 담겼다. 한 남자가 에펠탑 위에서 도색 작업을 하는 장면, 1950년대 파리 노동자의 현실을 담은 사진, 시위대 물결이 속에 한 청년은 신호등 위에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 1930년대 파리 뒷골목에서 신문을 파는 소년의 모습, 개선문을 관광하는 여행객들과 몽마르트르 언덕의 화가 등 파리의 일상 속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눈앞에 펼쳐졌다. 사진뿐 아니라 파리의 의상, 고서 및 고지도 등을 통해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다.
매그넘 인 파리의 전시 구성은 아래와 같다.
1. 매그넘 인 매그넘
전시 참여 사진작가 40명 프로필과 인트로 영상으로 만나는 매그넘 포토스의 세계.
2. 파리, 가난과 전쟁으로 물들다 (1932-1944)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옛 영화를 뒤로하고 가난과 전쟁의 무대가 되어버린 파리를 매그넘 포토스의 창립자 로버트 카파와 데이비드 시무어 등의 눈으로 바라본다.
3. 재건의 시대(1945-1959)
재건을 통해 파리가 다시금 ‘예술의 수도’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시절의 노스탤지어.
4. 낭만과 혁명의 사이에서(1960-1969)
6·8 혁명을 통해 계속되는 혁명의 역사와 과거의 단절을 꾀한, 열기로 가득한 파리.
5. 파리는 날마다 축제(1970-1989)
퐁피두센터 건립과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건설 등, 영광의 역사를 넘어서 늘 새롭게 탈바꿈하는 파리의 모습은 언제나 새롭다.
6. 파리의 오늘과 만나다(1990-2019).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며 ‘파리 신드롬’으로 몸살을 앓지만, 그래도 여전히 모두에게 낭만과 꿈의 도시로 자리 잡은 파리의 오늘.
7. 플라뇌르(Flaneur), 파리의 산책자
8개 주제의 영상을 통해 만나는 122컷의 파리의 속살.
8. 파리지앵의 초상
피카소와 푸코, 에디트 피아프, 시몬드 보바르 등 파리지앵 24인의 초상사진.
9. 엘리엇 어윗-파리(Paris)
유머러스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는 매그넘 포토스의 살아있는 전설의 특별전
10.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파리의 패션과 럭셔리
럭셔리 산업과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서 만나는 세계 패션사의 잊지 못할 순간들.
11. 살롱 드 파리(Salon De Paris)
고지도 및 고서, 일러스트 34점을 통해 바라본 파리의 영광과 근대 수도로서의 위상.
12.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파리(Paris)
파리를 사랑한 위대한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카메라에 포착한 파리와 파리지앵의 세계.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엘리엇 어윗의 특별전이다. 현재 그는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작가 중 최고령으로 무려 92세이고 살아있는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파리의 거리 곳곳과 파리지앵, 그리고 그곳에 사는 동물, 특히 개(Dog)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인상적이다. 그의 작품에는 유머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있다. 게다가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고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도 돋보인다. 그리고 그때 당시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이야기를 순간 포착으로 담아내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 보인다. 이게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다음 볼거리는 예술가, 작가, 음악가, 영화배우, 철학자들은 물론 평범한 파리지앵의 일상을 만날 수 있다. 그럼 ‘파리지앵’이 무엇인가?, 프랑스 문인이면서 언론인이었던 로제 그르니에는 자신의 책 ‘나의 위대한 도시 파리’에서 이렇게 파리지행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가 느끼기에 진짜 파리지앵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는 파리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정착이다.” 그에 말에 의하면 파리는 파리지행의 도시이다. 파리지행은 파리 태생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피카소와 달리는 스페인에서, 샤갈은 러시아에서, 쇼팽과 마리 퀴리는 폴란드에서,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왔다. 그들이 파리지행이다.
파리를 사랑하는 예술가, 과학자, 경제인들은 자신이 태어난 조국보다 스스로 ‘파리지행’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파리지앵으로 기억된다.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파리지앵 사유를 그대로 드러내는 좋은 사례이다. 그는 자신의 희곡을 모국어나 영어로 쓴 것이 아니라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0세기 미술의 천재 피카소는 스페인의 말라가의 작은 도시에 태어나 19세기 파리에 온 뒤 파리에서 살다가 죽으면서 500여 점의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루마니아 출신이고 알베르트 자코메티 역시 스위스 사람이다. 이들이 파리지행이다. 이처럼 파리는 열린 공간으로 도시의 분위기와 색깔을 바꾸어 가고 있다. 전시에도 문화, 철학 분야에서 지성과 예술사 바꾼 위대한 파리지행의 24인 초상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그 대표적으로 레이몽 드파르동이 찍은 차이와 동일성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Gilles Deleuze(1925~1995) 모습과 마르틴 프랭크가 찍은 언어, 지식, 권력, 그리고 사회통제의 상호 연관성 연구로 유명한 프랑스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1926년~1984)의 자택에서 모습, 브뤼노 바르베가 찍은 소설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Marguerite Duras(1914~1996년) 모습 등 아주 평범한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담겨 있다. 파리가 가진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 독특한 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또한, 그들은 2차 대전 참화 속에서도 전쟁이 남긴 상처를 사진으로 마주했다.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라데팡스 또는 조지 퐁피두 센터와 같은 주요 건물과 기념비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기쁨과 자유 그리고 사랑, 투쟁, 노동 등이 함께 녹아있다. 이 처럼 파리가 겪은 90년간의 역동성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배경과 이력을 가진 작가들의 예술혼이 스며들어 승화되는 하나의 위대한 미학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처럼 세계 사람들에게 누구나 꿈꾸는 환상의 공간인 파리의 모습을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 작가들의 사진을 보는 것은 필자에게도 하나의 행운으로 기억될 것이다. 필자는 파리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파리를 다녀온 것 같다. 마치 소설가 박경리가 소설의 배경이 된 하동 평사리를 가보지 않았으면서도 토지를 썼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기록을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렸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세계 사진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인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자본으로 자유로워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라고 생각한다. 2020/12/13 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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