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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cation of Culture Homi K. Bhabha 문화의 위치

by 뜨르k 202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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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cation of Culture  Homi K. Bhabha

이론에의 참여(The commitment to theory)
1) 호미 바바의 문제제기

호미 바바는 과연 무엇을 의도했는가? 이것은 아마 문화의 세계화에 따른 피지배자의 혼성성의 증대에서 정치적 저항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사이드의 작업이 서구의 동양에 대한 지식체계가 제국주의에 기여했는가를 밝혀내었다면 호미 바바는 그러한 서양 지식체계 내에서 피식민지인이 제국주의 체제에 대하여 어떤 교란과 저항을 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식민주의 체제가 자체 내의 매끄럽지 못한 이질적인 요인들에 의하여 식민주의의 의도가 어떻게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밝혀내는 데 큰 관심을 잦고 있다. 그의 이론에서 중요한 개념들인 혼성성(hybridity), 양가성(ambivalence), 모방(mimicry)등은 식민체제가 식민지 백성을 만들어내고 종속시키고 순화시키는 과정에서 식민지 백성들을 완전히 식민 체제 내로 끌어들인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의 식민 담론을 분석함으로서 밝혀내고 있다.

 

2) 탈식민주의 영화 담론

탈식민주의 영화 담론은 크게 세 가지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첫째는 서문에서 밝혔듯이 전지구적 자본주의화라는 세계 체제의 맥락이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국가와 전지구적 관계를 탐구하고 이 안에서 여성과 민족의 중층된 억압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미 바바는 탈식민지 시대에 민족 문화는 이전과는 다른 문제틀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족 문화의 경계는 야누스의 얼굴이 된다. 즉 그것은 통합되지도 않고 단일하지도 않은 항상 "혼성성 Hybridity"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제국의 문화와 피식민지 문화는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의 탈식민지 시대 자본의 논리 하에 서로 균질화되고 동질화되어 간다. 따라서 유기적이고 단일하고 고정되어 있고 본질적인 문화적 정체성은 폐기된다. 다만 그 두 문화가 교차하는 그 사이의 in-between 공간에서 문화정치적인 권력을 담은 의미들이 협상되는 것이다. 따라서 탈식민지 영화 연구는 영화가 이 공간에서 정체성들을 어떻게 협상하고 중재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탈식민주의 영화 담론의 배경으로 들 수 있는 두 번째 요소는 포스트 이론이다. 포스트 이론은 그것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비판 연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따리의 차이의 철학과 노마디즘 Normadism, 미쉘 푸코의 지식/권력 체계에 대한 분석 및 저항의 미시 권력은 그들이 등장한 이후 거의 모든 이론, 탈식민주의, 탈근대주의, 탈구조주의, 후기 페미니즘, 문화 이론, 퀴어 이론에 영향을 미쳤다.

셋째는 영화 역사의 변화로서 이제까지 타자로 호명된 주체들이 영화 이론 및 실천에 개입하기 시작한 맥락이 있다. 즉 큰 타자로 간주되어 왔던 이들이 자신들의 배제된 경험과 억압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세 가지 맥락에서 등장한 '탈식민 Postcolonial' 이란 용어는 무엇을 가르키며 어떤 면에서 유효한가? 영화 담론은 왜 제3세계 영화에서 제3영화로 그리고 지금의 탈식민주의로 개명되었는가? 오늘날 탈식민주의 담론에는 여러 주장들이 공존한다. 즉 지금 이 시대는 피식민지 국가와 제국간의 관계가 연장되고 있을 뿐이므로 신식민지 시대라는 주장과 제국과 피식민지 국가는 이전과 같은 수직적인 권력 관계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보다 복잡한 권력망에 놓여있으며 이러한 미시적인 층위들이 어떻게 다른 차이들과 갈등하고 협상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는 탈식민지 시대에 대한 옹호가 공존한다. 이 두 가지 입장 중 어느 쪽도 아닌 지금의 시대는 그저 식민지 시대 이후 문자 그대로 포스트 식민지 시대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탈식민주의라는 용어를 폐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개념을 확장시켜서 권력을 지닌 또 다른 지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탈식민'이란 말은 민족과 국가가 젠더와 인종 및 에스니시티와 같은 기표들과 어떻게 어느 지점에서 조우하며 협상하는지를 묻는 데에 필요한 기표이다. 또한 탈식민이란 말은 푸코와 들뢰즈 이후에 외부의 지정학적 공간을 넘어서 육체의 식민화와 영토화까지를 아우르는 역동적인 개념이라는 걸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민족과 에스니시티 집단과 남성/여성, 백인종/유색인종, 이성애/도착이라는 육체의 존재론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 이 육체로 인해 감금당한 피식민자와 식민자의 권력 관계를 사유하는 데에 '탈식민'이란 기표는 중요한 문제틀이라는 것이다.

포괄적으로 보면 탈식민주의는 앞서 포석을 친 세 가지 맥락을 통해 기존의 지배적 사유에 저항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기존의 지배적 사유란 이분법적 사유, 즉 서양/동양, 식민자/피식민자, 백인/유색인,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정신/몸, 개념/감각, 주체/타자, 주관/객관 이라는 단선적이고 이원론적이며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적인 논리 중심주의, 이성 중심주의, 시각 중심주의, 유럽 중심주의를 말한다. 탈식민주의는 위의 이분법에 내재해 있는 권력 관계를 단순히 역전시키는 데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 그것은 동일자의 복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분법은 역전이 아니라 해체되어야 하며, 중심주의의 중심은 '차이의 반복'을 통해서, 차이의 증식을 통해서 탈중심이 되어야 한다.

제3영화 담론이 부분적으로 전개했던 저항의 지점은 탈식민주의 담론과 영화 연구에서 분명해 진다. 탈식민지 영화는 여성/원주민/피식민지 등등으로 '다원적 존재방식'에 퍼져있는 모순적이지만 상호 공존하는 정체성을 드러내며 삼중의 사중의 생성과 변화를 드러내는 나 를 보여준다. 이는 타자와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사유와 저항적 영화 담론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질문하게 한다. 다음 장에서는 탈식민주의 담론이 제기된 이후 타자와 정체성의 개정된 관계를 살펴보고 이러한 정체성과 타자의 관계를 형상화하고 그 둘을 협상하는 영화를 찾아 나설 것이다.

 

3) 제3의 정치학

바바의 이론적 기반은 크게 오리엔탈리즘과 비판이론이라 부르는 탈구조주의 이론이다. 바바는 유럽 메타이론의 절취와 왜곡 또는 제3세계적 창조성이든 간에 동양은 서양의 거울에 비취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본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새로운 영미 민족주의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새로운 영미 민족주의는 제3세계 국민들과 지역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신제국주의적으로 무시하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점차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고 본다.

 

 

탈식민주의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이항대립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포함한다. 제국주의에 대항하면서 식민주의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탈식민주의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계속 있어왔다. 예컨대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가장 유력한 이념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탈식민주의는 민족주의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동안 자신의 적수의 자기중심적 논리를 모방하게 된 점을 비판한다. 그와 달리 진정으로 식민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한편 스스로의 자기중심성 역시 넘어서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와는 달리 탈식민주의는 그처럼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극복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런 자기중심성의 해체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이항대립을 넘어선 제3의 정치학을 암시한다.

4) 이항대립 넘어서기

바바가 문제 삼는 작품들 속의 인물들은 모두 동일성(identity)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다. . 즉 어떤 사화나 문화의 중심에 속하기보다는 주변에 위치한 존재들인 것이다. 바바가 자신의 논의에서 중시하는 인물들도 동일성이 아닌 차이(difference)를 경험하는 존재들이다. 그것은 바바의 표현대로 이 모든 차이를 분석하고 논하는 것이 결국은 어떻게 달리(Other-wise)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탐색이기 때문이다. 물론, 확고한 이항대립의 구조가 갖는 문제점들은 많은 문화연구자들이 이미 충분히 지적해 놓은 것이다. 인종의 흑과 백, 권력의 유무, 지배하기와 지배받기, 억압과 저항에 대한 재현과 분석은 단지 맑스주의 이론에 충실한 예술가와 연구자들의 단골 메뉴가 아니라 거의 모든 문화행위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주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이 이항대립의 엄격함을 넘어설 수 있는가를 논하는 지점에 우리는 이르게 된 것이다. 바바의 논의가 중요성을 띠는 것은 이 때문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 주변적 존재들, 접경시대의 존재들의 삶이 중요시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들이 이항대립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양가적 존재들로서, 대립의 완충지대에 거하는 까닭이다.

바바의 시도는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항대립’의 단순성과 도식성을 넘어서, 그 돌파구 없는 대립의 역사를 넘어서 보고자 하는 데에 있다. 그 목적을 위하여 그는 타자들의 경험에 주목하여, 그 타자들의 언술(discourse)을 연구한다. 즉 타자들의 언술이 어떻게 주체들의 언술을 모방하고 수용하는 하면서도 교묘하게 기존의 언술들은 교란시키고 그 언술들의 허점을 드러내 보이는가를 밝힌다. 바바의 이와 같은 이항대립 넘어서기 시도는 단지 이론의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론과 실천 또한 이항대립의 요소로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본다. 즉 이론과 실천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겹쳐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론은 실천보다 선행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한 시대의 이론과 정치적 실천은 나란히 갈뿐 마주 볼 수도 없다. 다만 앞선 이론에서 자기 것을 만들어 바로 그것에 저항하는 것, 닮았으나 결코 똑같지 않은 것이 지닌 저항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론가의 사치적 책임이라고 호미 바바는 말한다. 바바는 식민주의 담론의 선구자격인 파농을 비판하곤 한다. 파농이 이항대립적인 구도로 세계를 해석하고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바바가 파농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사르트르를 부정하는 것은 그들이 이론과 실천을 엄격히 분리해 두고 있기 때문이다.

3) 문화적 차이

구조주의 이론에서는 문화적 차이는 문화적 정체성 형성 체계들의 구성에 상응하는 인식할 수 있고 신뢰할 만한 문화적 언표작용의 과정을 본다. 문화적 차이는 일종의 의미작용의 과정이며, 그 의미작용을 통해 문화의 진술들의 힘의 장∙참조관계∙적용성∙수용력을 차이화하고 구별하며 권한을 부여한다. 언표작용적 과정은 문화적 동일화의 수행적 현재 속에 어떤 분열을 틈입시킨다. 그 분열은 전통적인 문화주의적 요구와 새로운 문화적 요구의 불확실성 사이의 분열이다. 문화적 차이가 분절되는 언표작용의 제3의 공간은 전이와 교섭의 첨예한 가장자리이며 사이에 낀 공간으로써 그 공간은 민족적이면서 반민족주의적인 국민의 역사를 구성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호미 바바는 중간자의 이치, 양가적인 존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바는 주변적인 존재(unhomed beings)들의 경험은 중심의 견고함을 변형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보았고, 중간자들의 의미는 그들이 견고한 이항대립-가진 자와 못가진 자,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등--을 완화시킬 수 있는 (easing the rigidity of binary opposition) 매개 항이 될 수 있다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틈새 영역’에서 생겨날 수 있는 이와 같은 새로움에 대하여, 바바는 “그것은 문화적 전이(cultural translation)이라는 모반을 꾀하는 (insurgent)행위로서 새로움(the new)에 대한 감수성을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문화적 전이에 의한 새로움을 창조하는 데에 키워드가 되는 것은 바로‘상호, inter'이라는 기호이다.

우리들은 문화의 의미에 있어서 그 무게를 옮기는 것은 바로 그 ‘inter’-즉 ‘in-between'의 영역인 동시에 전이와 교섭이 이루어지는 두 영역이 마주치는 날카로운 가장자리로서의 ’inter'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바로 이러한 제 3의 영역을 탐색하는 작업을 통하여 우리들은 양극성(polarity)의 정치학을 회피하고 우리들 자신들의 타자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즉, 바바는 경계에 놓인 존재, 중간자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간자들은 종종 집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겨서, 집 아닌 곳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존재들이다.

4)  문제제기

(1) 식민지의 지배와 피지배가 또 다른 문화를 낳는다는 점에서 식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별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2)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문제를 현실의 문제로 보지 않고 차이, 차별이라는 해체적 사유의 이론적 적용에 그침으로써 식민 통치라는 역사적이 문제성이 흐려질 수 있지 않는가?

(3) 파농의 이항대립의 논의가 갖는 강점이 피식민인의 투쟁성 고취에 있다면 호미 바바의 논의는 이런 이항대립을 넘어서도록 함으로써 식민세력과 피식민세력의 대립구도의 기반을 침식하여 투쟁성을 약화시키지 않는가? 

                                                                        2004/09/24  /  혜윰인문학연구소 / 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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