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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深淵)과 무지 (無知): 마이스터 (Meister Eckhart) 중세 신비주의 사상적 계보

by 뜨르k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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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深淵)과 무지 (無知):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의 중세 신비주의 사상적 계보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형성 요인
1.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2. 僞디오니시우스의 영향
3. 중세 스콜라 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

Ⅲ.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Ⅳ.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계보
1. 타울러(Tauler)와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와의 관계
2. 마틴 루터와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와의 관계

Ⅴ. 나가는 말

 

Ⅰ.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사상사적 계보를 고찰하는 데 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다양한 사상에 의하여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또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를 통하여 중세 스콜라사상을 조감할 수 있을 것이며 신 플라톤 철학과 위 디오니 시스 이래 전개되는 부정 신학이 어떻게 스며있는지를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쇼펜하우어(Schopenhauer)와 스피노자(Spinoza)에게도 권위 있게 인용되고 있으며 타울러(Tauler)와 수소(Suso)에 이어져 독일신비주의(German mysticism)의 원조가 되었고 프랑크푸르트(Frankfurter)란 익명의 저서를 루터(Luther)가 독일 신학(Theologia Gemanica)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판하여 루터(Lutter)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독일 관념론(Geman Idealism)에도 영향을 주었다. 오토(R. Otto)는 에크하르트에서 지성(intellectus)과 이성(ratio)과 같이 칸트(Kant)에게서 순수이성(Pure reason)과 이해(Understanding)에 도달된다고 하여 칸트의 근본적 개념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에크하르트는 신비 사상가로서 전대(前代)의 여러 사상가의 영향을 받으며,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본 논문은 에크하르트의 사상사적 계보를 추적함으로써 그의 신비 사상의 교회사적 의미를 찾는 데 있다.

 

Ⅱ.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형성 요인
1.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사상에 직접 영향을 준 것은 신플라톤주의였다. 신플라톤주의자(Neo-Platonist)이며 신비주의자인 플로티노스는 후대의 신비 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철학의 특징은 온갖 형태의 二元論을 배격한 데에 있다. 그는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존재한다고 보고, 존재의 근원을‘一者’라는 원리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에게 있어서 신이란 바로 이 일자로서 절대적으로 초월적인 존재이다. 일자라는 의미는 수로서의 하나가 아니고, 모든 수를 초월한 것, 따라서 하나라고 하는 수까지도 초월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일자(一者)는 현실의 모든 분열을 넘어선 곳, 곧 주관과 객관의 분열, 자아와 세계와의 분열을 넘어선 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특수한 것의 밑바닥에 있는 심연(深淵)이며, 한정된 모든 것, 개별적인 모든 것이 가라앉는 심연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심연은 모든 존재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모든 존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로티누스 철학의 전 체계는 세계와 세계의 모든 사물이 이 존재의 궁극적 근거로부터 어떠한 방식으로 생겨나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마치 빛이 태양이라는 광원으로부터 방사되어 나오듯이, 맨 처음 일자에서 ‘누스’(nous)가 유출되어 나온다. 이 누스는 영원한 근거로서의 일자가 자신을 직관하는 원리이다. 다음으로 플로티누스가 ‘영혼’(靈魂, psyche)이라고 부르는 원리가 있다. 희랍 사상에 있어서 영혼이란 삶의 원리로서, 이 영혼은 우리에 육체를 움직이며, 우주를 움직이는 원리이다. 플로티누스는 이 영혼이 그것의 첫째 원리인 동시에 궁극적 목적인 최고선을 찾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이러한 갈망은 동기지워진 모든 행동의 목표가 된다고 하였다.

요컨대, 플로티누스 사상의 체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근원적인 일자로부터 계층적 질서에 따라 먼저 누스가 유출되고, 그 다음 영혼이 유출된다. 영혼은 한편으로는 누스를 향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물질을 향하기도 하는 兩義性으로 인하여 물질의 세계, 곧 비존재의 세계로 전략한다. 영혼은 이렇게 떨어진 상태로부터 다시 거슬러 올라가서 가장 높은 일자에게로 고양된다. 그리고 그것은 황홀경에서 이 최고의 전재와 다시 결합한다. 사상사적으로 볼 때, 플로티누스의 신비주의는 僞디오니시우스(Pseudo Dionysius)와 같은 기독교적 신플라톤주의에 의하여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주며, 그것은 다시 에크하르트의 사상에 영향을 주게 된다. 에크하르트는 삼위일체와 창조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플로티누스의 ‘유출’의 개념을 원용하고 있다. 일자로부터 세계의 다양성으로 내려오는 존재의 하강적 발전과 일자로 복귀하는 상승적 발전이라는 이 원리는 신플라톤주의를 ‘기독교화’시킨 대표적 인물로서 僞디오니시우스의 사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2. 僞 디오니시우스의 영향

영혼의 상승적 발전이 플라톤에게서는 근원적 아름다움과 영원한 가치를 향한 동경으로서의 에로스(Eros)였다면, 위 디오니시우스에게는 신비적 무지를 통하여 신과의 합일(合一)에 이르는 과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각은 에크하르트의 신론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僞 디오니시우스는 신 인식을 위한 길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肯定 神學(positive theology)으로서 신은 모든 존재의 바탕으로서 현상계에서 부르는 모든 이름, 모든 속성이 그에게도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피조물 안에 있는 완전성 들이 신에 관하여 서술되는 것이나, 피조물 안에 있는 것을 그대로 신에게 서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에게는 피조계와 달리 아무런 불완전성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길은 否定 神學(negative theology)으로서, 신의 본성 그 자체가 신이란 볼 수 있는 것이라든가 말할 수 있는 것이라든가 하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신은 초 본질적, 초 실체적 존재이므로 어떤 이름, 어떤 속성에 의해 표시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부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초지성(招知性) 이므로 피조물의 불안전한 속성으로 신에 이를 수 없고 결국 피조물의 속성을 거부하는 부정적 신학으로 신 존재에 이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정신학의 길은 언어와 사고에 의하지 않고 신과의 결합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은 상승적 발전이라는 신비주의적 과정에 따르는 것이다.

이 부정신학의 신비적 방법은 전통적으로 신비적 경험의 과정으로 여겨지는 세 단계 즉, 금욕에 의한 정화(purification), 신비적 관조에 의한 조명(illumination), 신과의 통일을 향하는 복귀로서의 합일(union)의 과정을 포함한다. 이 마지막 상태는 ‘신비적 무지’(mystical ignorance)의 상태이다. 한편 僞 디오니시우스는 신플라톤주의를 기독교에 매개시키는 과정에서, 유출을 하나의 자연적 사건으로서 이해하지 않고, 신의 인격적 활동으로 이해하였다. 즉, 그는 신이 그의 자비로 인하여 만물에 존재를 부여했다고 보았다. 이렇게 인격주의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그는 당시의 이교적 사상과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도 신과 인간의 결합은 분열이나 이원론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합일을 이루는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위 디오니시우스가 일자인 신에게 적용한 ‘표현 불가능한 어두움’(ineffable darkness), '사막‘(desert), '무'(nothing)등의 개념들이 에크하르트의 신격의 개념에도 반영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디오니시우스의 신적 합일의 개념은 모든 관념과 지식을 초월하여 몰아적 상태에 이르는 것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의 신학의 특징은 무정념(apatheia), 즉 정욕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말로 형용하거나 설명할 수 없으며, 이성적 추론으로 도달할 수도 없는 신비한 분이다. 인간의 관념들은 하나님에게 접합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제한하고 멀리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려면 그것들을 마음에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디오니시우스는 하나님을 알려면 그것들을 마음에서 제거해 버려야 한다. 디오니시우스는 하나님을 묘사하는 데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방식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정념은 우리의 상상력과 감정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그려보려고 시도하는 긍정적 방법이며, 신비의 길을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 유익하다. 무정념은 하나님에게 합당치 못한 모든 관념을 제거하는 부정적 방법이다. 무지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며, 무지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합일에 접근하고 있는 사람은 무정념의 방법이 필요하며, 지적 능력을 완전히 부인하는 수동적 상태가 요구된다. 이 수동성은 인간적인 것이 하나님과 융합되는 사랑의 엑스타시(ecstasy)로 이어진다. 디오니시우스의 신비적 방법은 합일을 위해 하나님에 대한 긍정적 논의와 부정적 논의를 결합하고, 마지막에는 긍정과 부정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의 사상은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중세 전반에 영향을 주었고 특히 에크하르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3. 중세 스콜라 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향

에크하르트는 스콜라 철학자이며,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도미니코회의 신비주의자들이 기도했던 것은 토마스의 신학 체계를 실제의 종교 생활에서 살리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콜라 신학의 체계 속에 신학적으로 표현된 것을 실제로 살릴 가능성을 자신들에게 그리고 민중들에게 가지기를 원했다.폴 틸리히는 에크하르트가 추상적인 스콜라적 사고(개념)에다 따뜻한 종교적 감정과 힘찬 종교적 사랑의 행위를 가진 불탄 혼을 결합했다.라고 말한다.

비록 에크하르트가 그의 저술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신학적 입장은 이 세상과 저 세상, 영과 육의 이원론적 대비를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보다는 보편자가 개별자 안에 존재한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에 근거한 아퀴나스의 신학에 가깝다. 이것은 그가 도미니크회 소속으로서 아퀴나스의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과 아마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도미니크 수도회에서 교육을 받고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사상적 세례를 받으며 자신의 신비주의 사상을 전개해 나아간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신은 순수현실태(actus purus)이며 다른 편에는 절대적인 가능태가 있다. 이 양자 사이에 가능태와 현실태의 혼합으로서 피조물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절대 가능태 즉, 무(無)라는 한 극에서 또 다른 한 극인 순수현실태(神)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현실화하여 가는 과정 중에 있는 중간적 존재이다.

피조물은 신에 의하여 문자 그대로 ‘창조된’ 존재이며, 신은 이런 존재의 출발점이면서 그와 동시에 목적이기도 하다. 모든 피조물이 유출되어 나오는 궁극적인 원천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실태가 가능태보다 논리적으로 우선한다는 점에서 신은 그 존재의 출발점이며, 현실태는 곧 가능태의 완성이요, 가능태는 현실태를 동경하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신은 그 존재의 목적이다. 이러한 아퀴나스의 설명은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무 또는 신성에서 유출, 창조되어 나온 피조물이 ‘영혼 안의 말씀 출생’이라는 단계를 거쳐‘神性에의 돌파'를 향해 나아간다는 용어로 표현될 뿐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이 점에서 에크하르트의 사상은 아퀴나스로 대변되는 스콜라 철학의 영적, 신비주의적 전개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에크하르트가 아퀴나스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은 감정이나 의지, 이성보다 지성을 우위에 두는 사상이다. 아퀴나스는 이성을 시간적인 것을 파악하는 추론적(discursive)지식으로 보고, 지성은 영원한 것을 파악하는 통합적(unitive) 지식으로 보며, 신을 ‘사고의 사고’라고 부른다. 또한, 에크하르트는 신적 존재보다 신적 지성을 우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아퀴나스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퀴나스는 부정신학의 입장에서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면서도 또 한편 신과 세계 사이의 유사성을 부각함으로써 신과 세계의 관련을 설명하려 한 데 비해, 에크하르트는 부정신학에 따라서 신과 창조물 사이의 간극을 극단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차이를 보인다. 정통적인 스콜라 신학자들과는 달리 에크하르트는 이 간극의 극복 방법을 신비주의적 合一에서 찾았다. 이 점에서 그는 위 디오니시우스의 신플라톤주의적 신비주의자의 계열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Ⅲ.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에크하르트는 「첫 번째 파리문집」(First Parisian Question)에서 존재(being)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존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의 속성으로서 보이는 한 하나님은 가장 순수한 존재이시다. “한 처음 말씀이 이었다.” 는 것은 존재의 모퉁이 돌로서 지성을 자리 잡게 하다. 따라서 에크하르트는 한 처음에 말씀(Word)이 있었지 존재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기자의 말대로 태초에 존재보다 말씀이 있었는데, 이 말씀은 ‘인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즉, “말씀”과“진리”는 앎과 관련된 것이지 존재와 관계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일자이고 그의 속성은 일치이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지성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일자(One)라고 말하는 것과 동등하다.

에크하르트의 존재론의 절정이 기독교 삼위일체에서 찾아진다고 할지라도 그 신비적 철학의 절정은 신적 존재의 근원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신적 존재는 그의 실재보다 차라리 일치이다. 신적 존재는 모든 존재의 손수 또는 존재의 충만으로 묘사된다. 피조물이 존재라면, 하나님은 존재를 초월하시고 존재의 순수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존재라 부른다면 우리는 피조물을 무(nothing)라고 불러야 한다. 즉 피조물은 순수 없음(pure nothing)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일치된 것으로서 피조물은 영원히 존재하고 불변한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본성은 두 개의 본성을 갖는다. 즉 무(nothing)와 무한한 신성(Deity) 사이의 긴장 속에 놓이는 것이다. 즉, 피조물들을 하나님(God)과 무(nothing) 사이에 놓인 분리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무로부터 자신의 실재를 끌어오는 대상으로 이해한다. 즉, 인간은 지적 이해(지성)를 통하여 일자(One)로 돌아온다. 따라서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의 모든 존재는 지성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에크하르트가 플라톤 전통(특히 플로티누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존재보다는 이해(지성)로 부르기를 더 원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에크하르트는 모든 피조물의 근원을 無로 보지만 하나님에게로 돌아 갈 수 있고 하나님과 관여되는 것은 영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유한자인 피조물은 하나님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 에크하르트는 영혼의 불꽃(the spark of the soul)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영적 본질로서 영혼을 간주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혼의 여러 기능 - 예를 들면 보는 기능, 인식하는 기능 등 - 과는 구별된다. 이것이 바로 영혼 안에 있는 능력(faculties)이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에크하르트는 여러 가지 다른 어휘(영혼의 능력, 영혼의 성, 영혼의 빛 등 )를 사용한다.

 

피조물로부터 분리된 활동과 실존은 지성이기 때문에 인간이 신성과 하나게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능력, 즉 “우월한 이성적 능력” 또는 “영혼의 불꽃” 안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참 지성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지성은 창조되지 않으며, 창조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하나인 인간의 지성은 사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진정한 신적 연합이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전적인 단순성과 일치 안에서 신적인 지성과 닮은 영혼이 깃든 육체로 진실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영혼은 신성만이 소유하는 자유와 순수성을 안다. 하나님은 영혼 깊은 곳에 거주하기 때문에 지성(intellect)은 심층에서 그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크하르트는 사람의 삶이 순결하고 가난할수록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가장 고귀한 것은 자신을 비우는 것이다. 그는 무심(Disinterest)을 사랑보다 더욱 고귀한 것으로 평가한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God)과 신성(Godhead)을 구별한다. 하나님과 신성은 활동하심과 활동하지 않음으로 구별된다. 하나님은 활동하신다. 그러나 신성은 활동하지 않는다.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신성은 신의 절대적 초월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인간의 어떠한 이름이나 개념이나 상징이나 그리고 어떠한 속성으로도 표현 불가능한 신의 고유의 실재성을 말한다. 그리고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는 철저한 ‘부정의길’이라는 고유한 방법을 통하여 전개된다. 僞 디오니소스(Pseudo-Dionysius)이래 전개되는 부정신학(negative theology)은 중세 신비주의 정점에서 서 있는 에크하르트에게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에크하르트 신비주의는 인간의 영원히 어떻게 신과 창조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며, 또한 신에게 상승하여 그와 합일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에 있다. 그에 의하면 그 가능성은 우리 인간이 신의 형상인 영혼과 지성을 소유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의 결합 그리고 육체적 감각과 욕망 때문에 혼탁해지고 어두워져서 신과 창조 세계의 참모습과 그 신비를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신성은 존재 자체, 존재의 심연, 침묵이므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하나님과의 합일에 의해서는 우리 인간의 영혼도 자기 비움, 자기의 무화, 자기 부정 또는 자기 포기, 영혼의 순수화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영혼의 자기 비움과 순수화의 최상의 방법을 에크하르트는 무심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에크하르트는 무심이 영적 가난, 자기 무화 그리고 버림을 의미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에크하르트는 인간이 이러한 최고의 인식 경지에 도달하면 우리 영혼이 완전한 무심을 이루어 순수한 영혼의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이 영혼의 순수 과정이 무심의 과정인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인간의 최고 가치는 사랑인 것이 분명하지만 자신은 무심을 사랑보다 더 위에 놓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사랑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지만 무심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게 하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는 무심이 이 세상과 모든 피조물로부터의 분리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의 분리로부터 분리까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중 부정으로서 철저한 자기 부정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비록 한 인간이 한 왕국이나 전 세계를 버린다 해도 자기 자신에 집착한다면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서 무심의 목표는 철저한 자기 비움인데 이 철저한 자기 비움은 다름 아닌 자아의 순수화 곧 영혼의 온전히 맑아짐을 뜻한다. 이러한 상태가 바로 신성의 모습이 비치게 되는 상태이다. 또한, 철저히 무심된 영혼의 상태가 마음의 가난한 상태이며, 또한, 신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청결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지금 이 시각도 신의 말씀 곧 진리인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탄생시킨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고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한 자기 부정과 자기 비움을 이룰 때 우리 영혼 속에 그리스도가 탄생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이 온전한 무심을 이루어 영혼의 비움의 상태, 무의 상태가 되었을 때 신의 말씀 곧 로고스가 우리 영혼 속에 탄생한다는 말이다.

 

Ⅳ.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의 계보
1. 타울러(Tauler)와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와의 관계

타울러는 에크하르트의 신론에 있어서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모든 존재를 초월해 있는 존재는 인간 표현을 초월해 있으며, 선과 악, 지성과 사랑 등도 그 궁극적인 진리를 설명하기에는 적합한 말이 될 수 없고, 무(無)라는 말로서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다음과 같은 선언은 우리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충격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에게는 선도 없고, 더 좋은 선도, 최고의 선도 없다. 궁극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선하다 하는 자는 마치 태양이 검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불평을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 된다.”

같은 의미도 타울러도 말하기를 “하나님은 질서, 존재, 선, 그리고 모든 특별한 것 위에 계시며, 모든 이름 위에 계신다.”라고 말한다. 에크하르트와 타울러 두 사람에 있어서 하나님 안에 참여한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무(無)의 경험, 이것이나 저것이 아닌 존재, 세상의 복합적인 요소들과 섞일 수 없는 존재의 경험이었다. 하나님 뒤에 있는 하나님(God-Behind-God)에 대한 무엇을 경험한다는 것은 사막을 걷는 것과 같은 것이고, 침묵을 듣는 것과 같은 것이며, 음부의 곁에 섰거나 음부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때때로 신비주의자들은 이 경험을 “영혼의 어두운 밤(The dark night of the soul)”이라는 말로 표현을 한다. 「독일 신학」도 모든 이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과 대치하는 다각적인 세상의 현실을 의미 있게 취급한다.

타울러와 에크하르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가장 중심이 그리스도에 의해 흔들린 자,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처럼 되어 가는 자로 이해한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삶을 사는 자는 고귀한 자인데, 이 고귀성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를 포기하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에크하르트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타울러는 한편으로 에크하르트의 말에 동의한다:“내가 하나님을 보는 눈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는 눈과 같을 것이다. 내 눈과 하나님의 눈이 하나이며, 같은 지식, 같은 느낌, 같은 생각이다.”그러나 그는 속으로 동의하지 않는 가운데 동의한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인 것과 자연

적을 뒤섞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울러는 인간을 영적인 것과 대조를 이루고 존재하는 자연적인 것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로 이해했으며, 에크하르트보다는 더 많은 인간 실존의 모순을 주장한다. 이처럼 에크하르트와 타울러는 여러 가지 차이점과 유사점이 있지만, 사상사적 계보의 측면에서 보면 에크하르트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2. 마틴 루터와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와의 관계

루터는 전적인 하나님 신앙을 내면세계에서 찾았고 Theologia Germanica를 번역하였으며, 에크하르트가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에서 의를 말하는데 비하여 루터는 성서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야 의롭다고 했다. 전경연은 에크하르트의 영향으로 인한 Theologia Germanica를 설명하면서 루터의 영향을 논하고 있다.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사상은 타울러(Tauler)와 수소(Suso)에 이어져 내려왔으며, “하나님의 친구”(the Friends of God)운동을 통하여 신비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익명의 저자로 된 “독일 신학”(Theologia Germanica)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독일신비주의의 계열에서 그 시대에 많은 감명을 주고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의 고전으로 내려오는 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독일 신학」이라고 불리는 책이다. 이 「독일 신학」은 에크하르트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 이상으로 고대의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이 「독일 신학」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흥미 있는 것이다. 루터는 이것을 타울러流의 저자라고 하였고 사람들은 타울러가 아니냐고 추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상에 있어서 타울러는 고난 신비주의 경향이 많고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에 있어서는 양심의 고통의 지옥을 겪은 자가 천국에 가깝다든지, 그리스도의 절대적 역할을 강조하는 점에서 특수하다. 루터가 이 책을 출판하기 전에 있는 대본을 발견하여 출판한 파이퍼 교수는 이 책이 1380년경에 쓰였다고 보는 데 대하여 타울러는 1361년에 죽었다고 그 묘비에 쓰여 있으므로 이 책의 저자가 될 수 없다. 아마 에크하르트의 최후와 같이 될까 염려하여 저자가 자기 이름을 숨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역사적 의미는 실로 그것이 루터의 종교 개혁과 맺어진 관련해서 찾아진다. 이 책은 루터로 말미암아 極口 추천받아서 보급되었다. 루터는 “나는 성서와 성 어거스틴의 글을 제외하면 하나님, 그리스도, 인간 및 만물에 관하여 이 책 이상으로 배운 것은 다시 없음을 고백한다.”라고 말하리만큼 이것은 루터에게 의의 깊은 책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루터가 독일어로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한 기쁨 이상으로 그의 복음 이해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은 있음 직한 추측이다. 이 책을 현대 독일어로 번역 출판한 뷰트너나 만텔은 함께 이것이 루터를 암흑에서 영광으로 끌어낸 것이라고 말하나, 교회史家 K・뮐러와 루터 연구가 H・뵈머는 루터의 내적 발전에 있어서 그것의 그다지 큰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루터는 분명히 에크하르트의 빛 아래에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독일 신학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의”(Iustitia Dei)에 대한 개념의 유사성이다. 루터는 초기에 “하나님의 의”라는 것을 중세적인 맥락에서 이해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시편 9편에 대한 주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라는 개념을 비엘과 같은 via moderna의 개념을 따라 사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독일 신학에서도 위와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은총 역사를 받도록 준비하는 4단계의 과정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또한, 타울러는 합일된 사람은 다시 시련을 겪지 않으며 순전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본질적인 변화-존재론적인 변화-가 그 영혼에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진실로 하나님이 소유하신 영혼에는 모든 외적 활동이 그치고 하나님에 대한 내적 인지만이 강하게 증가한다.”는 이를 뒷받침 해 준다.

독일신학에서도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만날 때, 충동에 요동하지 않는 내적 만족과 고요가 있게 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존재 자체 보다는 오히려 의지와 그 상태의 변화임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것은“조명을 받고 참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바라고 선택하는 모든 것이 피조물들이 그들 존재의 깊음 속에서 바라고 선택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되어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과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게 된다.”라는 말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는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나아가 보다 경건해지고 신령해지며 죄와 불의에 대해서는 더욱 고통을 느끼게 된다. 또한, 독일신학은 하나님과 합일한 후에도 “속 사람은 영속적으로 연합한 상태에 있으나, 겉 사람은 세상적 삶과 규범에 의한 일들로 인하여 방황하도록 허락하신다.”라고 말한다.

Ⅴ. 나가는 말

지금까지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사상사적 계보를 중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고찰하였다. 에크하르트에게 영향을 미친 신비 사상은 광범위하며 전대(前代)의 거의 모든 大思想家의 영향을 받는다. 신플라톤주의가 그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 주의는 敎父들 특히 Augustinus와 Preudo-Dionysius, M. Confessor 그리고 Eriugena, Chartes 學派, 아랍 철학자, 및 Albertus와 그들의 학파, 또한 스콜라학파 특히 Thomas Aquina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중세를 통해서 강력한 神秘主義가 흐르고 있었다. 신비주의에 관해서는 12세기의 S.Victor의 Hugo와 Richardus, 13세기의 S. Bonaventura 등이 그 대표적 예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14세기에도 명백히 神秘 體驗의 성찰에 영향을 받은 철학적 사고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종교적 의식에 치중하는 흐름도 강력히 작용한다. Meister Eckhart(1260년경-1327년)는 전통적 철학에 깊은 조예를 가지며 그 범위 안에서 신비적 체험을 표현한다. 에크하르트와 같은 사변적 신비주의는 중세사상 속에 연면히 흐르고 있는 문제들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콜라 철학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이 철학과 관련지어 종교 생활을 깊이 익혀가는 운동을 일으켰다.

Tanler의 의지력과 열성은 Martin Luther에 영향을 미친다. Suso(Seuse)는 영원의 지에 대한 찬미자였으며 그 안에 스콜라 신비주의의 특징에 의한 사변과 심정이 서로 윤택하게 교류했다. 그뿐만 아니라 에크하르트의 정신적 흐름은 Luther의 저서 「독일 신학」와 Joannes Ruysbroeck의 저서 등에 나타난다. 에크하르트의 제자 Gerardus Groot(Geert Groote)는 공동생활 형제회를 창립하였다. 그 계통의 수도원에서 Nicolaus Cusanus가 교육을 받는다. 확실히 에크하르트는 중세의 신비주의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이며 후에 Hegel도 그를‘사변의 영웅’으로 칭송하였다. 그리고 루터파 신비주의 철학자 뵈메(Jacob Boehme)도 에크하르트에게서 많은 사상적 빚을 지고 있으며, 영국의 신비 사상가인「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의 저자와 줄리안 놀위지(Julian of Norwich), 그리고 스페인의 영성 사상가인 아빌라의 성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익나시우스 로욜라 및 퀘이커계 사상가인 루푸스 존스와 조지 폭스 등에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근대 이후에 와서는 특히 쉘링과 헤겔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신학자로는 루돌프 오토와 폴 틸리히가 에크하르트의 사상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에크히르트의 신비주의는 과거의 위대한 신학사고를 그의 신비 사상 속에 모아서 당시의 스콜라학문의 정상에 서서 오늘에까지 광범위한 인용이 계속되는 사람으로 신비주의의 체계를 이룬 분임이 틀림없다. 2003/12/뜨르

 

참 고 도 서
  • Rudolph, Otto 『Mysticism East and West』, Tr. Bertha L. Bracey (N.Y. Collier Book, 196
  •  S. P. Lamprecht, Our Philosophical Traditions,1955, 『서양철학사』,김태길 외 역 (서울: 을유 출판사,1963), pp. 153-154.
  • 송기득 역,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3)
  •  R. C. Petry, ed. Late Medieval Mysticism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 노종해,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연구』(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1)
  • Johannes Tauler, sermons, translation by Maria Shrady, introduction by Josef Schmidt, preface by Alois Hass (New York: Paulist Press, 1985)
  •  전경연, “완전한 생”, In, 예수의 얼굴,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1)
  •  Luther, Martin, "The Theologia Germanica of Martin" 노진준 역, 「독일신학」(서울 : 은성, 1989)
  • 요한 타울러, 엄상옥 역, 「완덕의 길」 (서울 : 은성, 1988)
  • 레이몬드 B. 블레크니 엮음, 이민재 역, 「마이스터 에크하르트」1 (서울 :다산글방,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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