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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인문학▣/인문학읽기

인간다움을 찾는 사람들, 『인문학의 숲』

by 뜨르 K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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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화두는 ‘인간’이다. ‘인간다움’ ‘인간성’ ‘인간 존재의 의미’ 등이 어떤 것인가? 등에 관해 물음이다. 여기서 인간다움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생의 과제는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 추구하는 것이다. 에우다이모니아가 무엇인가? 그리스어로 ‘좋은 영혼을 지니다’는 뜻이다. 정확한 번역이 아니듯 하지만 주로 ‘행복’으로 번역된다. 행복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인간다움에 대한 견해로 출발한다. 왜냐하면, 덕 있는 성품과 이성적 능력으로서 실천적 지혜가 결합하여 인간다운 삶이 번창하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간다움이다. 옛날 사람들은 인간다움 즉, 인간에 대한 이해도를 넓히기 위해 고전을 읽어야 했다. 고전을 통하여 인간에 관한 탐구의 넓이를 확대하고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마찬가지로 저자도 ‘고전’의 가치를 강조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인간을 이롭게 하는 고전의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장벽을 넘어 여전히 후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 ‘고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인문학’ 고전의 알맹이를 뽑아 이야기와 편지 형식으로 해설하여 ‘인문학의 숲’에 담았다고 술회한다. 그렇다. ‘인간다움’ 혹은 인간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은 인간을 위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해 준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인문학의 고전 33권의 동서양 명저들을 신중하게 골라서 섬세하게 읽고 해석하며 어떻게 적용할지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일종에 인문학의 가이드이다. 때로는 현대인의 감성과 깊이 있는 해설의 논리로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말이다. 게다가 단순한 작품 해설을 넘어서서 각 작품이 역사적 배경, 사회적 상황, 전문가의 견해 등을 첨가하여 우리를 인문학 숲으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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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려대학교 독일어권 문화연구소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시인이다. 저자는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서울대의 단골 필독서들을 엄선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논어》 《노자》 《맹자》 《어린 왕자》 《데미안》 《역사란 무엇인가?》 등도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 파스칼, 토머스 모어, 프리드리히 횔덜린, 마르틴 부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들도 눈에 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철학과 사상, 사회와 역사, 소설과 드라마, 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몇 가지만 요약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인간다운 성품인 인(仁)으로 선한 정치를 강조하는 공자의《논어》
  • 지배 논리로 백성을 억압하던 시대에 측은지심과 덕을 강조한맹자
  • 교만,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장벽임을 성찰하게 해주는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론
  • 근대, 이성주의(理性主義)를 성숙시킨 임마누엘 칸트의순수이성비판
  • 르네상스 시대, 이성의 한계를 통찰한 블레즈 파스칼의팡세
  • 계몽주의, 공유재산 등,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토머스 모어의유토피아
  • 역사는 창조의 스승, 역사학의 새로운 장을 연 에드워드 카역사란 무엇인가?
  • 지배자가 짓밟은 민중을 대신 복수한 프리드리히 실러의빌헬름 텔
  • 조선 봉건사회의 문화의 벽을 허무는 연암 박지원의열하일기
  • 나치의 독재에 맞섰던 독일의 양심, 잉게 숄의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스탈린의 통치, 지도자 지배의 복종 결과를 보여주는 조지 오웰의동물농장
  • 휴머니즘, 소련 공산당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파스테르나크의닥터 지바고
  • 권위적 편견과 인습적 강요의 사슬을 끊고 독립적 자의식의 길을 연 헤세의데미안
  • 역사와 정의, 그리고 사랑을 버무린 변주곡 윤동주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본문을 선택하여 더듬어 보자.
교만,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장벽임을 성찰하게 해주는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론》

아우구스티누스의《고백록》이 현재까지 여전히 고전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가톨릭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였지만《고백록》은 단지 신앙 서적이 아니라 “학문은 왜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통해 학문의 존재 이유와 학문의 목적 그리고 학문의 자세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현대인이 꼭 읽어야 할 고전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뉘우치는 삶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뉘우친다는 것은 잘못을 안다는 뜻입니다. …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모르는 것은 진리 탐구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겸손은 진리의 문을 여는 현명한 열쇠입니다.” (p.45)
아무리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아무리 강해도 학문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헛된 욕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깨달았다. …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식을 통해 얻은 수사학의 능력으로 “남을 이기는” 데서 쾌감을 얻었다는 고백 한다.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던 시절에 학생들을 “신실한” 인재로 성장시켜야 하는 교육자의 소명보다는 “말(言語)로 남을 이기는 재주를 파는” 지식의 상거래에 열정을 기울여 왔다고 참회한다. (pp. 47-48)
르네상스 시대, 이성의 한계를 통찰한 블레즈 파스칼의《팡세》

중세와 달리 파스칼은 이성과 신앙이 동반자의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신앙도 이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하고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성의 도움으로 인간 자신의 실체를 냉정하게 성찰하고 이성의 모든 것까지 신에게 절대적으로 의탁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이다. 이처럼 파스칼의 회의는 그의 이성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해 주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갈대처럼 연약하고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신(神)에게서 선사받은 ‘이성’의; 힘으로 사색과 깨달음을 멈추지 않는 ‘생각하는 갈대’란 것을 잊지 마세요. ‘이성’이라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영원한 길을 걸어가는……, -현대인에게 주는 블레즈 파스칼의 편지 (p.53)
지배자가 짓밟은 민중을 대신 복수한 프리드리히 실러의《빌헬름 텔》

 

저자가 말하기는 대부분 실러의 희곡은 사회개혁의 이상을 노래하고 자연 속에서 자유를 누리려면 신분의 해방과 정치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이념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희곡《빌헬름 텔》도 마찬가지이다.《빌헬름 텔》은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그림으로도 유명한 18세기 희곡이다. 이 작품은 실제로 독일 연극 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오페라로도 만들어 사랑받았고 스위스에서는 거의 국민 극으로 해마다 상영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저자가《도적 떼》와 함께 이 희곡을 선택한 이유도 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고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빌헬름 텔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던 스위스를 독립시키려 했던 영웅이었고 압제당하는 민중과 나라를 위해 해방하는 투사였다. 실러의 앞선 작품《도적 떼》에서 혁명의 실패로 끝났던 《빌헬름 텔》에서 성공으로 열매를 맺는다. 빌헬름 텔은 오스트리아 총독을 제거한 다음 “파리치다”에게 이렇게 외쳤다.

“나는 신성한 자연을 위해 복수했소.”

 

저자는 이 말의 의미를 주인공 빌헬름 텔의 가상 언어로 다음과 같이 옮겼다.

 

“게슬러의 억압 때문에 민중의 자연성은 죽어 버렸소. 알프스의 산기슭에서 더는 평화로운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단 말이오. 나의 화살이 게슬러의 심장을 꿰뚫지 않는다면 민중의 혈관 속에 서 흘러가는 자연의 숨결을 어떻게 살려낸다는 말이오? 민중의 생활 속에서 잠들어 버린 자연성을 일깨우고, 민중의 마음속에서 죽어 버린 감정을 살려내기 위해 나는 활시위를 당긴 것이요. 지배자가 짓밟은 민중의 감정과 자연성을 대신하여 내가 복수해준 것이오. 모든 사람이 알프스의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에 누워 평화로운 목가(牧歌)를 부르는 평등한 세상을 열기 위하여.” (pp. 160-161.)

 

실러의 시〈환희의 송가> 베토벤의 9번 교향곡〈합창〉에 등장한다. 남녀 혼성합창으로 울려 퍼지는 <환희의 송가〉을 듣고 있노라면 빌헬름 텔과 스위스 민중이 함께 어우러져 해방의 ‘환희’를 예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1823년 교향곡〈합창〉을 완성한 베토벤은 이 예술작품을 실러의 부인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p.161)

 

가장 달콤한 ‘자유’는 자연이 안겨주는 선물입니다. 나무의 형제처럼, 새들의 자매처럼 살아가는 초록빛 자유를 만끽해 보세요, 그러나 이 소중한 ‘자유’를 모두와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을 억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권력의 횡포에 항거해야 합니다. 빌헬름 텔처럼……-현대인에게 주는 프리드리히 실리의 편지(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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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즘, 소련 공산당의 비인간성을 고발한 파스테르나크의《닥터 지바고》
시대를 바꾸어 놓을 만한 역사적 사건에 직면해 주인공 유리 지바고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진정한 인간성 실현을 위해서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의 화살은 그의 인생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과녁을 향해서도 날아오고 있다. 이것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6년에 쓴 자전적 글에서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인생이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pp. 184-185)

이처럼 저자는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볼셰비키 혁명 당시 소련 공산당의 비인간성을 고발한《닥터 지바고》을 지목한 것이다. 파스테르나크가 소련 공산당 간부들의 휴머니즘을 외면한 비인간적인 집단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이에 저자는 이데올로기의 폭력에 맞서 내면적 투쟁을 겪는 어느 지식인의 고뇌가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고 소회를 밝힌다. 게다가 소설에서 인간의 가장 값진 가치를 ‘사랑’이 이 소설을 지탱하는 든든한 토대라고 말한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성의 열매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이렇게 본다면 ‘인간성’. ‘사랑’, ‘자유’, 는 소설《닥터 지바고》를 구성하는 삼중주가 아닐까? 하늘빛처럼 맑은 영혼을 사랑의 심연 속에 아낌없이 쏟아붓는 자유여!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꿈꾸는 값진 인생의 열매가 아닐까? 인간성, 사랑, 자유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문학과 작가 정신을 우리의 가슴에 선명히 아로새기는 키워드이다.(p.185)

 

소설의 주인공 유리 지바고처럼 소설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가시밭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당국의 압력에 의해 수상을 거부했고 또한 배신자로 매도당해 국외 추방 압력을 받았다. 게다가 소련 작가 동맹으로부터 제명 처분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이 시대에 그의 명작《닥터 지바고》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얻어낸 승리의 전리품으로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지바고의 눈으로 볼 때, 저자는 소비에트 공산당과 그 권력자들이《신약성경》에서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이라며 꾸짖었던 예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해석한다. 율법이라는 명분으로 종교의 핵심인 사랑을 놓쳤던 바리새인들처럼 말이다.

권위적 편견과 인습적 강요의 사슬을 끊고 독립적 자의식의 길을 연 헤세의《데미안》
이성과 감성의 하모니를 자아내는
인생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악보에 그려 넣을 음표가 필요합니다.
그 3화음의 음표는 책, 자연, 예술입니다.

책은 무지(無知)의 알을 깨뜨리는 힘을,
자연의 욕망의 알을 깨뜨리는 힘을,
예술은 고정관념의 알을 깨뜨리는 힘을
여러분에게 선사할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세 친구의 도움에 의지해
알의 껍질을 부수고 성숙의 하늘로 날아오르세요.

-현대인에게 주는 헤르만 헤세의 편지 (p.215)

 

권위적 편견과 인습적 강요의 사슬을 끊고 독립적 자의식의 길을 연 헤세의《데미안》 중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문장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여기서 깨뜨려야 할 세계와 태어나려는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저자는《데미안》에서 알을 깨고 비상하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권위적 편견과 인습적 강요의 사슬을 끊고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길을 선택했다고 평가한다. 교육 체계의 일방성과 교육 방법론의 획일성 고발한《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저자는 학생의 이성과 감성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해 결국 정신적 성숙의 길을 방해한다고 논평한다. 그리고《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는 자기 자신이 진정한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한국 젊은이들이 헤세의 소설을 영혼의 청량제로 삼아 잠들어 있는 이성과 감성을 깨울 때가 아닐까? 조언한다.

 

교육 체계의 일방성과 교육 방법론의 획일성은 학생의 이성과 감성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해 결국 정신적 성숙의 길을 방해한다. 그것을 고발한 소설이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라면, 소설《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에서는 ‘나’ 자신이 교육의 주체가 된다. (p.217)

역사와 정의, 그리고 사랑을 버무린 변주곡 윤동주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본 제국주의 시대 저항 시인으로 잘 알려진 윤동주는 유독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이 많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서시〉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자화상〉
  •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다.”〈또 다른 고향〉
  •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별 헤는 밤〉
  • “시가 이렇게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쓰인 시〉-p.27

이 책의 저자는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억눌렀던 ‘부끄러움’의 시원은 식민지 백성의 무력함과 지식인의 절망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적 한계 상황의 벽에 부닥쳤을 때 괴로움의 열병을 앓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을 아는 길의 출발점”(p.275)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의 시작이라고 설파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또 다른 고향〉에서 노래한 것처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은 ‘백골’과 같다. 그러나 시인은 백골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나”의 모습인 아름다운 혼을 향해 비상하고자 한다. (p.276)

 

저자는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백골’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을 백골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의 아름다운 혼을 향해 비상하고자 하는 것으로 일제(日帝)에 맞서 싸우는 윤동주의 저항 의식이라 풀이한다.

이 저항 의식은 “어둠을 짓는” 능동적 행위로 나타난다. 미래의 유토피아인 “아름다운 또는 또 다른 고향”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 윤동주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조국의 독립을 시작으로 한반도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사랑을 나누는 세계이며 사랑의 힘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낙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상적 세계를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별”이라 부르고 있다. (pp. 276-277)

이처럼 저자는 역설적으로 서정성이 저항 의식을 낳는 원천이고 저항 의식은 서정성을 강화하는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윤동주의 항거는 마하트마 간디, 독일의 레지스탕스 ‘백장미’, 예수의 평화적 항거와 매우 닮았다고 평가한다.

 

우리의 모국어는
한국인을 사랑을 전해주는 전령입니다.
잊히지 않는 사랑의 추억이
한국인의 이름 속에 살아 있습니다.
이웃의 무너진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손길이
한국인의 말속에 살아 있습니다.
가족의 가슴에 ‘별’을 아로새기는 희망의 노래가
한국인의 글 속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의 모국어는
한국인의 사랑이 끊임없이 용솟음치는
생명의 핏줄입니다.

-현대인에게 주는 윤동주의 편지
위에서 더듬어 보았듯이 필자가 볼 때 저자는 우리가 고전 작품들을 읽을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할 정도로 인문고전 작품 속에 숨어있는 인간다움의 통찰을 날카롭게 드러냈는데 탁월하다. 자연의 풍성한 숲처럼《인문학의 숲》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하다. 아래도 책의 이해도 높이기 위해 중요 본문을 군데군데 발췌하였다.
공자가 제자들을 교육하는 과정과 방법은 고대의 학문체계에 비추어 매우 다양했다고 볼 수 있다. ‘인(仁)’의 의미를 생활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가르쳤으며, 시를 짓고 풀이하는 능력을 길러 주었고, 붓글씨의 서체와 서법을 터득하도록 이끌었다. 또한, 훌륭한 음악을 들을 줄 아는 능력과 함께 직접 연주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p.16)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가장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시대는 공자가 제시한 법을 따른 시대였다.” -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Voltaire)(p.21)

 

서양철학의 렌즈로 바라본 도는 어떤 것일까? 고대 그리스 현자 플라톤에게 도를 묻는다면 그는 “이데아(Idea)”라고 말할 것이다. 이성주의(理性主義)를 성숙시킨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게 질문한다면 사물의 본질이자 사물의‘실체’인 “물(物) 자체(Ding an sich)”라고 말했을 것이다. (p.38)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식을 통해 얻은 수사학의 능력으로 “남을 이기는” 데서 쾌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던 시절에 학생들을 “신실한” 인재로 성장시키려는 교육자의 소명보다는 “말(言語)로 남을 이기는 재주를 파는” 지식의 상거래에 열정을 기울여 왔다고 참회한다. …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실한 고백은 자신의 학문과 교육 속에 학생들을 향한 ‘사랑’이 결여되어 있음을 뉘우치고 있다. ‘사랑’이란 본래 “겸손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하는 데도 “무지를 슬퍼하기는커녕 지식을 뽐내는” 교만에 사로잡히다 보니 자신의 학문은 진리를 향한 길을 잃고 자신의 교육은 지식의 바다에서 표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 48)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하고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칸트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이성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성의 한계를 깨닫는 힘도 이성에서 나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성의 도움으로 인간 자신의 실체를 냉철하게 성찰하고 이성의 모든 것까지도 신(신)에게 절대적으로 의탁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임을 파스칼은 문학적 언어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p. 60)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준 것은 인간의 ‘비참함’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파스칼은 생각하기 때문이다. (p.63)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했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뜻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 마르틴 부버가 썼던 《나와 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독일어로 저술된 이 책은 1923년에 출간된 후 1937년 영어로 처음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 알려졌다. “나”와 “너”의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관계”가 사회의 시작인 동시에 작은 사회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p.69)

 

이것을 ‘문명적 문화’라고 정의한다면 연암 박지원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추진력이 ‘문명적 문화’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선각자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개념을 빌려 표현하자면 “제1의 물결”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조선의 봉건사회를 “제2의 물결”의 근대 사회로 거듭나게 할 가능성은 문명적 문화의 힘에 달려 있음을 믿었던 진보적 지식인, 그가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pp. 85-86)

 

가상의 섬나라인 ‘유토피아’와 가공의 인물인 라파엘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는 모어의《유토피아》를 문학의 고전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16세기 초반의 영국 정치와 영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정치비평과 사회비평의 성격이 강하다. … “사유재산 제도”를 거부하고 공유재산 제도의 필요성을 호소한다는 점에서는 사회학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p.95)

 

토인비는 괴테(J. W. von Goethe)의 희곡이자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인 〈파우스트(Faust)〉에서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 발전의 원리를 발견했다. ‘진리’ 탐구에 매진하려는 파우스트 박사의 의지를 꺾으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전’과 이에 대응하는 파우스트의 ‘응전’을 그려낸 〈파우스트〉의 〈천상의 서곡〉 편에서 토인비는 역사 해석의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p.114)

 

“농장”의 “동물들”, 즉 러시아 인민은 자신들의 자유를 스탈린의 독재 아성(牙城)에 스스로 결박했다. 에리히 프롬의 시각으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바라본다면, 인민은 그들이 마지막까지도 포기하지 말았어야 할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p.134)

 

흰고래 모비 딕은 인간의 능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초월적 힘, 신적 존재, 신적 경지 등을 상징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불가해한 세계, 절대적 진리, 절대적 선(선), 절대적 미(미)의 세계를 나타낼 수 있다. 모비 딕은 문명의 힘으로는 정복할 수 없는 자연의 세계를 상징할 수 있다. …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시각과 정반대를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소설 모비 딕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 안에 양립하고 있는 양면(양면) 가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화합시킬 것인가? 하는 인생의 숙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고민이 될 것이다. (pp. 175-176)

 

나의 선배 작가 톨스토이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은 오로지 사랑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메마른 땅에서는 ‘자유’라는 꽃이 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자유’의 열매는 사랑의 수액(樹液)을 마시며 자라납니다. –현대인에게 주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편지 (p.181)

 

어린 왕자의 맑게 빛나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다섯 번째 별에 사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아닐까? 그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편리와 안정을 위해서도 다른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다. 또다시 라인홀드 니부어의 가치론에 비추어 본다면 가로등 켜는 사람은 어떤 일을 궁극적 가치로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는 사람들에게 평안, 행복, 희망을 주는 참 아름다운 일을 궁극적 가치로 소중히 여기며 지금 이 시각에도 어둠의 흙 속에 빛의 씨앗을 심고 있지 않을까? (pp. 197-198)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어느 시대 어느 독자가 읽더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길을 안내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나’, ‘너’, ‘우리’가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가꾸어 가기 위해서는 희생, 헌신, 세워 주기, 반성, 겸손, 칭찬, 충고 등이 지속적으로 상호 작용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p.234)

 

주신(酒神) 디오니소스 사제들이 포도주의 힘으로 각 나라의 백성을 잠에서 깨웠듯이, 시인은 시와 노래를 통해 민중의 의식을 각성케 하는 존재다. 민중에게 신의 선물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시인은 신의 사제와 같다. 횔덜린에게 있어서 신의 선물이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를 뜻한다. (p.240)

 

차례

머리말: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길을 찾아서
제1장 철학과 사상 분야의 명저 이야기
첫 번째 인간다운 인간의 성품, 인 – 공자의 《논어》
두 번째 인의 근본은 인간의 선한 본성 – 맹자의 《맹자》
세 번째 자연을 닮아가는 인생 – 노자의 《도덕경》과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네 번째 겸손에서 시작되는 진리 탐구의 길 –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다섯 번째 동반자의 길을 걷는 이성과 신앙 –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여섯 번째 대화의 소통에서 함께 누리는 자유 –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

제2장 사회와 역사 분야의 명저 이야기
첫 번째 문화의 벽을 허무는 지식인의 리더십 –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두 번째 그 어디에도 없지만 그러나 꿈꾸어야 할 세상–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세 번째 역사는 창조의 스승 –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네 번째 ‘자유’의 제단 위에 바친 젊음의 피 –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다섯 번째 자유를 결박하는 욕망의 올무 –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여섯 번째 소통과 상생의 사회, ‘프랙토피아’를 향하여 –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 에른스트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제3장 문학 분야의 명저 이야기–소설과 드라마
첫 번째 압제의 철벽을 넘어 자연의 품으로 – 프리드리히 실러의 《도적 떼》와 《빌헬름 텔》
두 번째 무한한 해석의 바다에서 상상의 돛을 올리자 –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월트 휘트먼의 《풀잎》
세 번째 인간성의 생명나무를 찾아서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와 《신약성경》
네 번째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생의 가치 – 라인홀드 니부어의 눈으로 바라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다섯 번째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자의 절규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사천의 착한 사람》
여섯 번째 알의 껍질을 부수고 성숙의 하늘로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제4장 문학 분야의 명저 이야기–시
첫 번째 세대를 초월한 서양의 잠언적 서사시 –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두 번째 시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빵과 포도주〉와〈독일인의 노래〉
세 번째 시인은 민중의 대변자 – 하인리히 하이네의 〈슐레지엔의 직조공들〉과 〈시궁쥐들〉
네 번째 정의와 사랑의 변주곡 –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부록 현대인이 꼭 읽어야 할 인문학 명저

2022/10/22 혜윰인문학연구소 / 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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