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바흐친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 민중문화』
바흐친의 라블레 읽기가 과연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라는 물음은 글을 읽는 내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바흐친은 웃음, 광장의 언어, 민중 축제적 형식과 이미지, 향연, 물질적 육체적 하부의 이미지 등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바흐친이 전혀 민중문화와 다른 풍요의 이미지와 웃음이미지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로테스크한 몸의 이미지와 풍요로운 음식의 이미지와 결합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미지들 통하여 중세적인 공포와 고뇌를 뒤집으려는 라블레와 바흐친의 카니발적인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그러면 이것이 바흐친이 꿈꾸던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셰계의 육체화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리고 바흐친은 왜 우리가 애써 구분 짓는 경계를 철폐하려고 하는가? 다시 말하면 사적인 육체와 민중적인 육체의 간극을 양가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경계를 철폐하려고 하는가? 이것이 진정한 카니발을 위해서 인가? 이런 질문을 통하여 조심스럽게 바흐친에게로 접근해 보자.
바흐친의 카니발적인 세계관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노동과 음식의 관계이다. 바흐친은 음식이 노동과정과 분리되는 것을 비판한다. 이러한 분리는 바흐친의 입장에 볼 때 부르주아적인 민중적이고 집단적이어야 할 육체나 음식을 사적인 육체, 이기적인 인간의 쾌락이나 음식, 사적 이윤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바흐친에 있어서 그로테스크한 육체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노동과 음식, 인간과 세계, 두개의 몸의 혼성성(hybrid)이다. 바흐친은 노동의 대개개 전 민중적으로 돌아갔던 시대에 대한 찬미를 통해 노동과정의 최종단계가 사유화되고 이윤이 개인화되는 시장사회를 비판한다. 따라서 바흐친에게 카니발은 민중축제은 평등, 정의의 행위의 원리를 제도화한 것이다. 바흐친은 다양한 광장의 언어가 살아있고 음시과 몸의 교환이 일어나면 그를 통해 노동이 승리하는 세상을 꿈꾸었다.
여기에서 바흐친의 카니발이 나온다. 노동이 아니라 음식을 통하여 전 민중적 축제를 향유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적인 자선행위가 아니라 광장에서의 평등적 민중적 축제이다. 따라서 이러한 축제는 경제적인 요소보다 사회적 관계에 초점이 있다. 여기에서 축제가 가능한 공간이 바로 광장이다. 이것은 한국적으로 말하면 탈출놀이 이고 마당놀이에 해당된다. 탈춤놀이에서 바흐친의 광장은 한국에서는 마당(후에는 장터) 이라는 공간이다. 탈놀이는 민중의 축제이다. 이 축제를 통하여 민중은 역설적으로 머리로 사는 양반과 반대로 현실을 비판하고 그것을 넘어선 꿈을 꾸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바흐친이 말하는 카니발과 같이 탈놀이에서도 해학과 웃음이 있다. 웃음은 서사적인 웃음이 비공식적인 언어이고 삶의 언어이다. 이것이 광장의 언어이다. 광장의 언어는 권력의 언어를 즐거운 언어로 해체한다. 국가 권력의 언어를 웃음소리로 해채한다. 이러한 광장은 웃음소리, 비공식적인 문화, 비공식적인 이질언어, 바보등 사회적인 소수자들, 먹고 마시는 인간의 욕망이 공개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광장 또는 마당이 필요한가? 일단 대답은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는 진정한 소통을 위한 제3의 공간, 즉 광장이 필요하다. 광장은 민중의 언어를 생산한다. 광장의 언어는 기존질서를 비판한다. 그리고 광장의 언어는 축제의 언어이며 축제로 승화된 언어이다. 또한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공간(희년)에서 나온 언어이다. 이 공간은 인간의 이기심의 공간이 아니라 대화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것은 타자에의 삶에 반응하고 대답하는 윤리적인 책임에 기초하고 있다. 이 윤리적 책임성으로서 대화의 공간이 광장이다. 작금의 한국 상황에서도 진정한 대화을 위한 공간인 광장과 또한 광장의 언어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 광화문이 광장이고 그리고 촛불을 든 모든 공간이 광장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언어가 현재의 광장의 언어이다. 2016/11/18 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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