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위치 : 탈식민주의 문화이론, Location of culture, Homi K. Bhabha
문화의 위치는 탈식민주의 이론의 선구적인 호미 바바의 작품이다. 호미 바바에 따르면 식민담론은 피식민인-타자를 이데올로기적으로 고착시키며 정형화시키고 동일성(identification)를 요구한다. 그러나 피식민 주체들은 그 정형에 일치하지 않으며 동일화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동일성의 욕망하는 순간에도 피식민 주체들은 끊임없이 식민담론이 부과한 정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끄러지며 분열된다. 지배담론/문화에 대한 동일성과정에서 채택한 모방이나 흉내내기를 통해서도 주체는 지배담론이나 문화와의 완전한 동일성를 경험하지 못한다. 오히려 피식민 주체는 이질적인 지배문화와 차이를 보이는 문화적 혼성성을 생산한다. 담론적 측면에서 혼성성은, “담론의 대표성과 권위성을 얻으려는 권력의 축을 따라서 오히려 지배담론이 분열되게 만드는 것”이며, “상징에서 기호로 가치를 치환해 버리는 것”을 일컫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화적 혼성성이 애초에 식민 주체를 전유하려는 지배담론/문화를 뒤흔들고 비틀며 변화시키는 저항의 기능을 담지한다.
호미 바바가 인용하는 틈새의 공간은 제3공간 또한 혼성성의 공간이다. 호미바바에 따르면, 틈새의 공간은 지배/피지배 주체들이 자신의 문화적 흔적들을 지닌 채 서로 만나는 언표작용의 공간으로서, 문화의 의미와 상징들은 어떤 근원적인 통일성이나 고정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고지한다. 이와 같은 사이-내 공간(in-between space), 틈새인 제3공간과 혼성성의 개념을 통해 호미 바바는 대당의 정치학을 탈피하는 동시에 피식민 주체의 저항의 가능성을 상정했다. 바바는 오늘날 ‘문화(가 자리한) 위치’는 바로 이런 혼성성 과정이 생산되는 사이-내 공간, 틈새의 공간 즉 제3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6장 Signs taken for wonders (경이로 받아들여진 기호들)
1) 1817년 5월 델리 교외의 어떤 나무 아래서 나타난 양가성과 권위의 문제들
식민지 지배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식민지인들은 지배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는다. 영국인에게는 단순히 총에 칠해진 기름이 인도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호미 바바(BhaBha)에 따르면, 델리와 벵갈에서는 성경이 아주 다르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제국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성경은 성경으로서 읽히지 않고 휴지나 포장지로 사용되었다. 영국인은 성경이 인도인들 사이에 배포되어서 개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를 원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인도인들은‘그것(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유럽인의 책일 수 있겠는가?’라며 성경에 주어진 신의 대리인으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부인한다. 이것이 유럽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식민지인의 타자성이다. 지배자가 식민지에 가져온 모든 문화는 타자의 문화에 입각하여 다시 태어나고 새롭게 해석된다. 이 재해석 과정에서 식민지 담론의 권위에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원주민의 질문은 문자 그대로 책의 기원을 수수께끼로 전환시키고 질문한다. ‘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고기를 먹는 영국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이 말은 언표작용의역사적 계기인 문화적 차이의 질문이고 ‘우리는 그 책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믿고 있는데 . 어떻게 그것이 유럽인의 책일 수가 있는가?’이 말은 원주민의 질문이 문화적/역사적 차이가 전략적으로 부인되고 있으며 영국인의 현존과 영국인의 중재를 끌어들이면서(그들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내준 것입니다.
2) 조셉 콘래드 『어둠의 속』
『어둠의 속』에서 영국 제국주의 투철하고 명료한 사명감을 띠고 아프리카를 문명화시키기 위해 콩고로 간 커츠는 그곳에서 전혀 다른 의도와 다른 결과를 안고 파멸된다. 문명과 이성은 원주민 사치의 야성 앞에 무력했고 권력은 무한한 탐욕을 가능케 하여 커츠를 탐욕과 야성의 노예로 만든다. “공포, 공포”라는 커츠의 마지막 말은 이성의 빛에 억압된 인간의 야성적 본능에 대한 표현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상태에 대한 표현이다. 식민지 아프리카는 커츠라는 제국의 이성을 마비시킨 깊은 혼동이었다.
3) 경이로 받아들여진 기호들
이 글은 식민지의 권위의 표지이자 식민지적의 욕망과 규율의 기표인 경이로 받아들여지는 기호들의 양가성과 권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경이로 받아들여지는 기호들은 성경, 책, 영어 등이다. 이것은 식민주의적 권력의 문서의 승리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정신을 담은 칙령과 지상의 어두운 무법적 공간의 공격 사이에 낀 위치에 식민지적 텍스트가 존재하기에 양가적인 불확실성을 띨 수밖에 없음을 호미 바바는 지적하고 있다. 즉 모방적으로 독해하는 행위에서의 해석의 흔들림으로부터 권력효과의 문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권력효과란 식민지 공간을 구성하는 분열된 실천들 속에 개인화와 지배의 전략을 기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연결사의 배제는 성경의 현존을 문화적․ 정치적으로 권위 있게 만드는 그 구문적 지지물들(인접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코드들, 내포들, 문화적 연합물들)의 현존을 텅 비게 만든다. 따라서 그 같은 의미에서 책의 현존은 기표의 논리에 따르게 되며, 라캉적인 의미에서 충만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책의 권위 혹은 책의 어떤 상징이나 의미가 유지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빛이 바래게 된다. 현존의 환유가 이중화나 반복작용의 소원화 전략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빛이 바래지는 지점에서이다. 이중화는 권력의 현존을 차이적 인식과 위치의 맥락에 구문 적으로 접합시킴으로써, 그 고착된 동시에 텅빈 현존을 반복한다. 이때 차이적 인식과 위치의 맥락은 권위의 동일성을 소원화시키고, 새로운 인식의 형식들, 새로운 차이작용의 양식들, 새로운 권력의 위치들을 생산한다.
델리에서의 사례에서 우리는 현존의 환유의 과정을 통한 가치의 전략적 치환이라는 식민지적 이중화를 볼 수 있다. 우리가 문화적 식민지 담론의 특수한 공간의 감각을 얻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그 수수께끼 같은 부조화된 기표들(정형화, 조크, 다중적․모순적 신념, 원주민의 성경)속에 표상 되는 그런 부분적 과정을 통해서이다. 그 공간은 기원의 확실성 속에서 권위를 모색하는 식민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 모두에 의해 체계적으로 부인되어온, 분리된 공간이자 분열의 공간이다. 바로 그처럼 기원과 본질로부터 분열됨으로써 그 같은 식민지적 공간이 구성되는 것이다. 기표 즉 모방은 저항의 기호들이다. 여기에서 주인의 언어는 접종성의 위치(원주민의 호전적인 하위계층의 기호)가 되며 우리는 행간을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래의 행들이 그토록 투명하게 포함하는 강압적인 현실을 변화시키도록 모색할 수도 있다. 2016/12/14 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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