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인문학 산책 5: 암소에 정말 신들이 있는가.?
옛날에 필자가 기억하는 소는 평생 밭 논 갈고 온갖 노동에 시달리다 끝내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운명이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순순히 바치고 자신의 몸까지 식량으로 내놓아야 하는 운명 말이다. 반면에 인도 암소는 신의 반열에 오르면서 평생 유유자작하면서 먹을 걱정도 도살당할 걱정도 안 해도 된다. 소만큼 태어나는 장소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동물이 없는 듯하다. 현재에도 인도에서는 대략 2억 마리의 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힌두교에서는 암소는 여신이자 어머니 같은 신성한 존재이다. 또한 ‘신성한 힘’을 가진 존재로 악을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본다. 그래서 소가 늙어서 일을 못 하거나 우유를 만들어 내지 못할 때도 오히려 늙은 어머니를 모시듯 한다. 이것은 암소(牛) 숭배 사상 때문이다. 암소숭배 사상은 인도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도 어머니의 영양과 행복의 여신으로 숭배했다는 고증도 있다. 그 외 다른 나라에도 그런 흔적은 다소 존재한다. 그런데도 유독 힌두교는 암소숭배에 집착하는 듯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 암소에 신들이 있다고 믿는 것인가.? 아니 정말 암소에 신이 있는가? 이런 질문은 아주 고차원적인 질문이라기보다는 아주 몽매한 질문처럼 보인다. 누가 이러한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 이유를 차근차근 더듬어 보자. 암소숭배는 전통 종교 샤머니즘(shamanism) 입장에 볼 때 애니미즘도 아니고 일종에 토테미즘(totemism)인 듯하다. 동물 등을 신성한 존재나 신적 존재로 여기는 것을 볼 때 그렇다. 토테미즘은 특정 동물과 집단이 일종의 특수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집단을 통합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마치 암소숭배로 인도 사회가 통합되듯이 말이다. 한국사회의 토테미즘(totemism)도 고조선의 건국 신화인 단군신화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신화를 통해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에 대해 알 수 있다. 곰이 결국 사람이 된다는 신화는 곰을 숭배하는 부족이 호랑이숭배 부족을 이겼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고대에서 토테미즘은 동물을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부족이나 국가가 단결하는 힘의 마술 같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와 마찬가지로 힌두교에서도 그랬다. 앞 인문학 산책에서 언급했듯이 불교도 인도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9세기 동안 브라만과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결국은 힌두교가 승리했지만, 힌두교는 많은 불교 교리를 일정량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제계급 브라만은 그중 하나가 대중들에게 애착이 많은 힌두교의 건설을 위해 소의 신성함을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힌두 경전에 암소는 성스러운 신들이 사는 영물로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신격화 작업이 진행된다. 그 방법은 힌두교의 신화적 장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힌두교에서는 암소 몸의 모든 곳에 신들이 있다고 믿었다. 먼저 콧구멍에는 쌍둥이 신인 아슈빈(Aśvins)의 신이, 소의 똥에는 여신 락슈미(Lakshmi)가 살고, 가슴에는 스깐다(Skanda)신이, 이마에는 시바(Shiva)신이, 혀에는 사라스와티(Sarasvati) 신이, 꼬리 끝 털과 등에는 야마(Yama)신이, 우유 속에는 여신 강가(Ganga)신이, 그리고 '음매' 소리에는 베다의 네 여신이 살고 있다는 신화로 구조화된다. 이처럼 힌두교 브라만의 제사장들이 소 지킴이로 공식화하면서 소는 급격히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소 보호는 특히 비슈누 신과 연관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해 갔다.. 비슈누의 여덟 번째 화신(아바타)인 크리슈나(Krishna)는 목동으로서 소를 보호하는
신으로서 힌두교 최고의 신으로 자리매김했다. 크리슈나(Krishna)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신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제사의 신 인드라(Indra)는 모든 소를 제사의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 소를 찬탈하였는데, 그런데 인드라보다 한 수 위인 비슈누의 8번째 화신(아바타) 크리슈나가 이 잡힌 모두 소들을 풀어 준다. 이에 격한 감정을 드러낸 전쟁의 신 인드라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홍수를 쏟아부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한다. 하지만 다시 크리슈나(Krishna)가 산 안에 돌을 쌓고 소들을 그 안에 대피시켜 그들의 생명을 구하고 안전하게 보호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드라로부터 소를 보호한 크리슈나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가 힌두 최대의 축제 중의 하나인 디왈리(Divali)가 있다. 이 축제는 인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매년 5일간에 걸쳐 열리고 인도의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무게감이 있다.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크리슈나의 탄생지 브린다완에 있는 고 바르다나 산을 숭배하는 예식을 행한다. 원래 고 바르나(Govardhana)라는 어휘는 '소(go)를 증가시킨다(vardhana)'라는 문자적 뜻이 있다. 이것이 소의 다산성과 거룩함과 연관되면서 부(富)를 위해 소똥에 공물(供物)을 바치는 의식이 만들어졌다.
또 특이하게 인도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가우샬라스’이라는 곳이 있다. ‘가우샬라스’는 병이 들고 늙은 소를 돌보기 위해 만든 일종의 소의 요양소로 일종 돌봄 센터라 할 수 있다. 그 운영에 연간 1천억 원을 쏟아부을 정도로 인도 정부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 모든 소가 신성시되는 건 아니다. 신성시하는 소는 재래종인 ‘보스 인디쿠스(Bos indicus)’종이다. 물소 등은 오히려 죽음의 신 ‘야마’가 타고 다니는 동물이라 하여 오히려 도살돼 외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사육(飼育)되는 물소의 수가 5,000만 마리 이상이고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이라고 한다. 인도 인구의 약 10%를 점유하고 있는 이슬람교도와 4%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쇠고기를 즐겨 먹는다. 반대로 암소는 우유나 버터를 비롯하여 암소로부터 나오는 모든 부산물이 신성하다고 여긴다. 게다가 소의 소변과 대변 역시도 정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크리슈나 신을
기념하는 축제에서 사제들은 소 떼가 지나가는 동안 무릎을 꿇고 있다가 지나가고 나면 배설한 똥을 이마에 바르고 축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소똥마저도 신성시하고 있다. 농촌에 있는 의사들은 소의 발굽 자국으로부터 먼지를 모아서 치료 약으로 제조할 때 사용한다. 힌두교도들은 소가 방금 배출한 소 오줌을 ‘고무트라’라고 한다. 고무트라를 신성한 물질로 여긴다. 아픈 아이들에게 병 치료를 위해 고무트라로 목욕시키기도 한다. 소의 오줌마저 신성시하면서 각종 영약의 재료로 팔리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고무트라는 인도의 대표적인 건강 음료이자 만병통치약이다. 각종 암을 치료하고 영적 정화에도 효과가 있고 체내 독소 제거나 면역 체계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인도 마트에서도 판매 중이고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사이트인 인도 아마존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실제로 소의 오줌 고무트라가 우유보다 훨씬 비싸게 팔리고 있다. 우유 1L 가격이 한화로 약 950원이라면 고무트라 1L 가격은 3,000원 이상에 판매되고 있다. 인도 중부에 있는 한 소 연구소에서는 인도 민간에서는 소의 오줌으로 30여 종의 약을 만들고 시골 사람들이 선호하는 성스러운 약을 만드는 것이 연구소 최고의 꿈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래서 인도에서 암소 도살은 가장 흉악한 범죄로 지역에 따라서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중죄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처럼 인도 암소숭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단순한 토테미즘(totemism)이 아니라 힌두교도들에게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세게 서 있는 듯하다. 여기서 암소에 정말 신들이 있는가.?라는.? 물음도 어찌 보면 정답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론이나 인식론을 초월한 경계의 공간에 서 있는 듯하다. 2024/4/1 뜨르/ 혜윰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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