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인문학 산책 8: 인도 카스트(Caste) 제도란 무엇인가?
이번 인문학 산책은 인도 카스트제도이다. 우리가 알 듯하면서도 자세히 모르는 제도이기도 하다. caste는 ‘혈통, 품종, 인종(lineage, breed, race)’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casta에서 유래되었다. 1498년에 포르투갈인들이 인도에 도착하면서 인도에 이 단어가 들어왔다. 인도에서 카스트의 기원은 기원전 1,300년 전후 무렵부터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아리아인의 일부가 인도에 침입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오래된 역사이다. 아리안이 인도에 침입할 때 아리안족은 소수인이었다. 이에 다수인 원주민 드라비다를 다스리기 위해 묘책이 필요했는데 그때 만든 일종의 굴레가 카스트제도이다. 현재의 아리안족은 유럽인과 같은 백인종 계통의 민족이다. 이들은 원주민 드라비다를 진압한 다음 권력을 확고하게 하려고 ‘바르나(varna)’라고 불리는 신분제도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바르나라는 본래 색(色)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아리아인의 인도 침입 당시 피부색이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별로 구별했기 때문에 신분이나 계급을 의미한다. 바르나(varna)의 흔적은 기원전 1,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당시 문서로 추정되는 힌두 경전『리그베다』제10권《푸루샤 수크타》의 찬가(讚歌)에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언급한다. 이처럼 힌두교 신과 카스트 제도와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마치 신이 만든 제도처럼 말이다. 힌두 경전에 따르면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하여 태초에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 신화가 나온다. 푸루샤는 남자, 인간, 영혼 등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다. 신들이 푸루샤를 공물로써 규정에 따라 예를 드릴 때 푸루샤의 입은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 되었고 양팔은 군인계급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에서 상인계급 바이샤가 되었고 양발에서 노예계급인 수드라 계급이 태어난다. 이 네 계급은 바르나(Varna)제도 곧 사성제라고 불린다. 지배계층인 아리아인들이 드라비다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바로 카스트이다. 이는 힌두교의 ‘업’과 ‘윤회’‘윤회’ 사상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인도인들은 이를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르나는 총 4개의 계급 즉 브라만(Brahman 승려계급), 크샤트리아(Kshatriya 무사계급), 바이샤(Vaishaya 상공계급), 수드라(shudra 노예계급)이다. 바르나에 속하지 못한 계급이 불가촉천민이다. 4계급 중 수드라를 제외한 3개의 바르나는 두 번 태어난 사람으로 베다 문헌을 학습할 자격도 있고 결혼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아리안족이다. 자기들만의 리그처럼 말이다. 문제는 아리안족이 처음부터 브라만 계급이 아니었다. 초창기에는 귀족이나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아이었다. 하지만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 국왕(무사 계급)의 권력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사제의 권한도 강화되었다. 따라서 제사 의식에 대한 비중도 커지고 종교적 권위가 더 커지면서 점차 브라만은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중재자가 아니라 신마저도 움직일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우주의 창조주가 되었다. 이것이 기원전 800년경의 브라만교의 탄생이다. 힌두교가 발달하면서 브라만 계급이 귀족(무사) 계급보다 높은 계급이 되었다고 보면 된다.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피지배층으로 전락한 북쪽에 거주하던 선주민 드라비다족들은 결국, 인도 남쪽으로 쫓겨났다. 이들은 노예, 천민 계급 등 거의 일반 평민으로 수드라 계급이 되었다. 이들의 구분은 필자가 인도 남쪽 마드라스 여행에서 확인했듯이 피부색과 외모만 봐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 피부는 검고 체형은 작은 편이었다. 반면에 브라만 계급과 크샤트리아 계급의 외모는 하얀 피부에 키도 훤칠하다. 우리가 흔히 말한 서양인에 가깝다. 이 사람들이 소위 고위 카스트(Caste)들이다. 바이샤는 주로 농경, 무역, 축산 등에 종사하고 크샤트리아는 행정, 국방, 관세 등에 종사한다. 그리고 수드라는 부역을 담당한다. 예외도 있다. 남인도에서 드라비다인의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도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북인도 사람들이 별로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또한. 카스트(Caste)에는 기존의 4개 카스트 외 불가촉천민을 포함하여 다시 약 총 3,000개 이상의 집단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사성제조차도 들지 못하는 계급이 있는데, 바로 ‘아웃 카스트’로 불리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은 수드라보다 더 낮은 계급이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한다. 고대의 힌두 경전『마누법전』에서도 수드라와 불가촉천민은 ‘개와 당나귀’ 이외의 재산은 소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교육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이 규정을 위반하면 처벌하는 규칙도 구체적으로 명시할 정도이다.
베다를 들으면 귀에 납물을 부을 것이요.
베다를 암송하면 그 혀를 자를 것이며,
베다를 기억하면 몸뚱이를 둘로 가를 것이다.
기원전 1,000년경의 인도의 대서사시『마하 바라트』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에칼라비아라는 소년이 유명한 스승으로 알려진 드로나차리에서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보고 배우려고 했으나 결국 경고를 받고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위대한 브라만 스승이 왕족들과 군인 자제들에게 수업하는 걸 숨어서 몰래 훔쳐 배우게 된다. 밤에는 달빛을 받으며 배운 것을 연습하고 스승을 말을 암송했다. 몰래 보고 수련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궁술을 완벽하게 터득하게 된다. 그 기량을 뽐내고자 브라만 스승 드로나차리야 앞에서 번개처럼 빠르게 도망가는 사슴을 활로 쏘아 잡게 된다. 스승은 어린 소년의 뛰어난 활 솜씨에 놀랐다. 에칼라비야를 불러 자초지종 물으니 불가촉천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인도에서는 스승에게 제자가 선물을 바치는 전통이 있고 그 전통에 따라 소녀 에칼라비야는 자신을 노예로 바치려 했다. 하지만 스승인 트로나차리야는 소년의 몸이 아니라 오른손의 엄지를 원했다. 활을 당기고 쏘는 데 가장 중요한 엄지손가락을 잘라 달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소년은 피 흘리는 자기 엄지손가락을 스승의 발밑에 바친다.
인도의 어린아이들은 이런 신화를 듣고 성장한다고 한다. 에칼라비야처럼 훌륭한 제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이들은 사성제에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들이기 때문에 교육을 받을 수 없고 교육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트로나차리야은 브라만이다. 이에 비해 브라만은 철저한 기득권이다. 종교를 이용하여 무서운 권력을 유지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이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촉천민(달리트)에게는 철저한 희생을 강요한 것이다. 참으로 불합리한 구조이다. 인도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약 2억 명의 사람이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다. 불가촉천민은 억압받는 사람들 즉, 달리트라고 불린다. 이들을 하리잔(Harijan)이라고도 하고, 찬달라(candala)라고도 한다. 3500년 역사를 가진 이런 카스트(Caste)제도는 1950년 1월 26일 발표한 인도 헌법에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여기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신분과 종교를 근거로 차별받지 않는다고 명문화하였다. 그러면 현실에서도 정말 그런가? 인도여행을 하다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차별은 그대로인듯하다. 옛날에는 불가촉천민들이 땅에 침을 베트면 오염한다고 목에 그릇을 걸고 다녔고 더러운 자신의 발자국의 흔적을 지우려고 궁둥이에 빗자루 매달고 다녔고 한다. 물론 지금은 이런 모습은 아니지만, 여전히 인도인의 삶 속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도 인도인들의 이름만 보아도 한눈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도인들이 성은 카스트(Caste)에 따라 정하고 아버지 성에 따라 아들과 손자의 성을 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결혼도, 식사도, 직업도 이미 결정되어 있다. 또한, 학자가 될지도 청소부가 될지도 이미 정해져 있다. 실제로 인도 집에 들어가 보면 청소하는 사람, 식사 준비하는 도우미가 등 와서 일하고 식사도 따로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평생 바꾸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業)으로 받아들인다. 불가촉천민들은 여전히 동물 사체나 인분을 처리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들에게 신분을 바꿀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이것은 인간이 신의 섭리를 배반할 수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필자는 그 이유가 다르마(Dharma)에 있다고 본다.
다르마(dharma)는 힌두교 중요한 교리이고 종교 규범이다. 그 기원은 베다 경전에서 출발한다. 힌두교에서는 다르마가 힌두교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다르마(Dharma)는 힌두교도에게 베다 성전의 권위이기 때문에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 네 단계 계급(바루나)은 각각 자신의 사회적 반드시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다르마가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용어로 사용될 때는 카르마(karma)이다. 우리나라에서 직업(職業)을 말할 때 그 업(業)처럼 이것은 인간 행위의 ‘업’(業)이다. 왜냐하면, 인간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다르마는 ‘카르마’(karma)라는 인간 행위를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카스트제도를 인도 사회에서 영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인간이 감히 종교적 신성함인 신의 섭리에 도전할 수 없다는 논리로 구축했다고 보면 된다. 필자가 보기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한 종교억압 그 자체이다. 힌두교에서는 현재의 행위는 그 과거 행위의 결과이고 미래의 행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카르마는 그 자신 행위의 결과에 따른 것으로 ‘윤회’의 족쇄를 씌웠다. 그리하여 다르마(dharma)를 하층 카스트에 일임하여 평생토록 종교적 의무를 다하도록 강요한다. 또한 그들은 출생부터 카르마(karma)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교육한다. 그리하여 전생에 지은 죄를 현생에서 속죄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다음 생애는 내세에는 더 나은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에 더럽고 천한 일마저도 최선을 다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도인을 자주 만나게 되는 이유이다. 그것이 그들이 이승에서 해야 할 의무, 다르마(dharma)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필자가 인도 배낭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다. 바라나시에서 숙소를 찾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다가와 자기 숙소가 좋다고 열정적으로 홍보했다. 조금 하다가 말겠지 했는데 주위에 맴돌면서 거의 1시간 동안 필자를 설득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것 역시 일종에 다르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힌두교에서는 840만 번 환생하는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 해탈을 최고의 종교적 경지로 본다. 이때 영혼이 해방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윤회의 길을 연속적으로 가다 보면 결국은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역시도 카르마와 다르마에 논리에 따라 살아가게끔 주입되고 세뇌되어 의무에 순종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카스트(Caste)는 인도 사람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 요소로서 21세기 인도 사회에서도 여전히 강하게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 2024/5/24 뜨르/ 혜윰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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