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aking the Incomprehensibe God,
Gregory P. Rocca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Washington, D. C
Thomas Aquinas on the Interplay of negative theology and positive theology
Rocca는 이 책에서 주장하기를 토마스가 부정신학과 긍정신학을 함께 엮어서 신 담론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오로지 긍정신학과 부정신학을 상호관계 속에서 역설적으로 엮어 짜서 신 담론의 만드는 이유는 신앙과 신학이 균형 감각을 가지고 신에 대한 언명을 잘 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로카는 신은 결코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않다는 말한다. 만약 우리가 개념적 신 담론의 책략에 의하여 말려들면 우리는 신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신은 우리의 감각으로 잡힐 수 없다. 항상 비밀스럽고 신비적이고 불가해한 일자인 바로 그 신을 따르고 사랑하며 기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스의 긍정신학과 부정신학에 대한 역설적 얽힘에 대한 해석은 사회에서 신학의 의미뿐만 아니라 신의 신비에 대한 예배가 가능하도록 하면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우상화를 파괴할 수 있는 개연성을 담지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신앙에 대한 불가해성의 신을 경배할 수 없다면 진정한 신을 예배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토마스의 긍정과 부정신학의 역설적 상호작용에 대한 의미는 신에 대하여 신학의 언어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신성모독과 우상숭배가 될 수 없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아이콘에 의한 신앙을 가능하게 한다.
적어도 세 가지 핵심적인 이유 때문에 신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논쟁되어진 토마스의 긍정과 부정신학에 대한 역설적 조화는 우리가 어떻게 신에 대해 말해야하고 사유해야 하는 것에 물음을 제공한다. 토마스의 신학적 인식론과 초월적 유비에 대한 근거로서 의미 이전에 참을 놓는다.
첫째로 토마스의 신학적 인식론의 중요한 윤곽들의 위한 근거들은 조직적 신학의 진리들 위에 확고하게 기초되어 졌다 토마스의 신학은 긍정과 부정신학의 상호작용을 해석하는 방법의 타당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원한다. 토마스 신학은 독창적인 신학적 판단들에 의해 반사적으로 되돌아보는 그의 신학적 인식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들의 진리를 위해서 근원적인 인식의 조건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몸부림이다. 인식론적 그리고 언어학적 신학적 의미를 위한 토마스의 탐색은 그가 이미 인정한 신에 대한 그 참의 맥락이다. 토마스의 신학적 인식론에 대한 한 예로 볼 때 신 담론에 대한 우리들의 논쟁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기는 신에 대한 진리들로서 단어들, 개념들, 해석학적 방법들에 대한 성찰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로 신학자 토마스에게 신앙의 진리들이 이성의 진리들 보다 우위를 누린다고 주장한다. 토마스의 신학적 인식론이 그대로 남아있는 신학의 중심적인 긍정신학은 신이 존속적 존재의 무한한 행위이라는 그 진리이다 비록 신이 초월적이고 은혜적이며 근본적으로 우유적인 우주의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창조자이라고 하는 것을 그의 이성과 철학이 신앙이 인식하는 것을 지지하고 의존하고 표현한다고 할지라도 토마스에게 신앙이 이러한 주장을 위한 최고의 동기이라는 사실이 논의된다. 토마스가 제안하기를 성서에서 풍부한 신앙과 종교적 사고방식은 이성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은혜의 새싹인 긍정신학과 유비의 교리에 토대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부정신학의 근거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로 아퀴나스의 신학적 인식론은 조화롭고 포괄적이다. 토마스의 긍정적인 신학은 창조물들이 신의 유사성으로부터 신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에 따른 인식론적 귀결이다. 반면에 결국 이런 긍정신학은 이와 같은 창조물들이 무(nonthing)로부터 창조된 사실과 우리가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앎의 귀결이다. 토마스의 신학적 인식론의 모든 요소들은 신에 대하여 완전한 참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상호 관계적으로 연결 망 안에서 탐색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신학적 요소들은 신의 이중적 이해불가능성, 질적 그리고 양식적 부정신학, 위 디오니시우스에 대한 토마스의 삼중의 방법, 긍정신학, 초월적 신학, res/modus 구별 등이다. 토마스의 신학의 신학적 인식론은 조화와 견제들의 내적 체계로서 균형과 완화이다. 그의 부정신학은 신에 대한 모든 것에 어떤 인식을 부정도록 하는 아주 극단적이지 않다. 이것은 위 디오니시우스와 요한 다마스쿠스의 급진적 부정적 선언들을 교묘하게 완화하도록 하여 긍정 부정의 상호 관계적으로 진술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앎을 초월하여 어렴풋이 보이는 신의 신비적 불가해성이다.
토마스의 질적 부정신학은 담론의 전체 영역들의 모두를 제거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는 도저히 신의 본질을 인간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적극적이고 전적인 부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적 이름들에 대한 고유하고 존속적인 서술에 대한 토마스의 긍정신학은 확고하다. 토마스는 신적 이름들에 대한 은유적 서술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또한 더 깊은 다른 신적 이름들의 고유한 서술들을 배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신학적 유비의 특별한 경우를 포함하는 관계적 다의성에 대한 토마스의 유비는 일의성의 감추어진 우상의 핵심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일의성(pros hen)으로부터 단서를 얻은 유비에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실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에서 통일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토마스의 유비는 전통적인 좁은 의미인 개념보다 판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명확한 참을 주장할 수 있기 위해 이해되고 상상하는 의미들에 대한 확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객관적 부정 그리고 주관적 양식 부정신학의 두 유형과 그것과 반대되는 긍정신학 조차도 미묘한 차이, 인과관계들, 정화에 아직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학적 유비는 신에 대한 앎에 대하여 너무 최소평가도 너무 최대평가를 피하는 중도를 지향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긍정신학의 특별하게 수호자로 자처하는 유비조차도 그 자체 내적 부정의 계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마스는 “참의 빛(Truth's Light)과 신의 암흑(God' Darkness)이라고 하는 상호 모순되는 긴장을 통하여 역설을 이끌어낸다. 이것이 토마스의 신학적 인식론의 긴장의 평형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긍정신학과 부정신학을 대조적으로 상호 엮어 짜려고 노력하는 그의 몸부림이다. 이러한 긴장은 긍정신학으로 쉽게 치우치는 경향을 방지하며 부정신학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참(Truth): 이것은 단순한 추상적인 개념 너머 판단의 문제이다. 광범위한 부정적 앎보다 오히려 신의 바로 존재에 대하여 긍정적 앎, 빛 (Light): 이것은 조명이다 우리의 삶은 언어의 능력과 우리의 이성으로부터 우리의 삶이 신앙과 은혜로부터 받아드려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의 신비에 대하여 진리를 탐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God) : 그의 빛줄기 아주 약한 진리의 빛은 신의 은혜롭고 무한하며 창조적 신비를 목표로 삼는다. 흑암(Darkness) : 그럼에 도 불구하고 빛의 서광으로서 은유와 유비와 같이 진리의 탐조등은 시내산을 감싸고 있는 신의 짙은 암흑을 단지 가볍게 비출 수 있다. 그의 중심을 관통하거나 비추는 것이 결코 아니고 그의 어두운 존재를 비추는 것이다. 이것이 신의 불가해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토마스의 신학적 인식론은 우리의 신학적 탐구를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자료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순수한 긍정신학 또는 순수한 부정신학이 일의성과 다의성으로 일방적 그리고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기 장치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의 긴장된 참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의 신학적 대화는 아주 의미가 있다. 그리고 긍정신학과 부정신학의 역설적 상호작용이 포착하기 어려운 신 그리고 인식론적 그리고 언어학적 붙잡음을 피하는 신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성찰 할 수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현대신학과의 신학적 대화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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